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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과 그림자 ㅡ예술이 삶에게 말을 걸 때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Feb 09. 2025




                         

오래전 일이다.
학부 시절, 철학 수업은 늘 내게 쉽지 않았다.
어려운 내용을 굳이 더 어렵게 설명하는 것이 철학 교수의 본연의 권리인 양, 우리는 교수의 현학적衒學的이고 현란絢爛한 수사修辭의 늪에서 허덕여야만 했다.
그때
노트를 다시 펼쳐본다.
몇 줄 덧붙여,
이제야 그 질문에 답해본다.









거울과 그림자
ㅡ예술이 삶에게 말을 걸 때


                                 김왕식





플라톤은 “예술이란 삶을 모방하고자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이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려 하지만, 본질에는 도달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완벽한 원형인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우리가 보는 사물은 그 이데아의 모방이고, 예술은 그 사물을 다시 모방하는 것이니 결국 '그림자의 그림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은 본질에서 한층 더 멀어진, 단순한 흉내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에게 예술은 그저 삶의 표면을 따라 그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화가가 붓을 들어도, 뛰어난 시인이 펜을 잡아도, 그들의 작품은 진짜 삶의 깊이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여겼다. 그는 예술을 삶의 ‘잉여물’로 규정하며, 때로는 그것이 사람들을 진실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기를 뛰어넘어 오스카 와일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라고 말했다.
와일드는 예술이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예술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바꾼다고 생각했다. 예술이 단순히 삶의 모방이 아니라, 삶에 영향을 주는 힘이라는 것이다.

와일드의 말은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로.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 속 멋진 주인공을 보고 그 사람처럼 말하거나 옷을 입고 싶어 한다. SNS에서 본 아름다운 사진이나 영상을 따라 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바로 ‘생활이 예술을 모방하는 것’이다. 와일드는 예술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주고,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창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주장은 어느 쪽이 더 맞는 말일까? 플라톤의 말처럼 예술이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화가가 풍경을 그리거나, 시인이 사랑을 노래할 때, 그 작품 속에는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과 감정이 담긴다. 완벽한 복제는 불가능하다.
와일드는 바로 그 불완전함이 예술의 가장 큰 힘이라고 말했다. 예술가의 개입이 외려 우리에게 새로운 느낌과 해석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단순히 현실을 따라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과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예로, 한 편의 시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우리 마음속 감정을 흔들어놓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그림 한 장이 단순한 색채를 넘어, 우리의 기억과 감성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순간, 예술은 삶을 그저 따라가는 그림자가 아니라, 삶을 새롭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와일드의 말처럼, 오늘날 우리는 예술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SNS에서 본 멋진 장면을 따라 사진을 찍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예술은 우리의 일상 속 깊숙이 들어와,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놓는다.
여기에는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다. 와일드의 말처럼 예술이 생활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는 위험도 따른다. 때로는 예술 속 환상에만 빠져, 진짜 현실을 외면하게 될 수도 있다.

플라톤이 경고한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예술이 우리의 이성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술은 때로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예술을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삶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예술은 삶의 모방이 아니라 삶을 확장하는 힘이 된다.

예술은 삶을 그저 따라가는 그림자가 아니다. 때로는 삶보다 앞서서 우리의 길을 비추는 횃불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은 예술을 삶의 본질에서 멀어진 존재로 봤지만, 그는 예술이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고, 감동을 주는 힘까지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했다.

려 와일드는 그 감동의 힘이 삶을 바꾼다고 강조했다.

플라톤과 와일드의 주장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서로를 보완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이 삶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플라톤의 말이 맞지만, 예술이 다시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와일드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또 삶을 통해 예술을 이해한다. 이 둘은 서로를 비추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예술은 삶의 그림자이면서도, 동시에 삶을 바꾸는 거울이다. 마치 두 얼굴의 동전처럼, 예술과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술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그 예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가는지를 섬세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예술은 삶의 흉내가 아니라, 우리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힘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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