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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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托卵)과 우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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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란은 다른 개체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주인으로 자신의 새끼를 대신 돌보게 하는 자연의 전략이다.
두견이, 뻐꾸기, 매사촌 같은 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남의 보살핌을 이용하지만, 이 과정에서 둥지의 주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의 새끼를 정성껏 키우게 된다. 이 기묘한 자연의 현상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지만, 때로는 그 자식이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보게 된다. 부모가 심어놓은 가치관과는 다른 생각을 지닌 자녀를 바라보며, ‘이 아이가 정말 내 자식이 맞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이는 탁란 된 새끼를 돌보는 새의 마음과 닮았다. 둥지의 새는 알이 자기 것이 아니란 사실조차 모르고, 기꺼이 먹이를 물어 나른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기대와 다른 길을 가는 자녀를 보면서도, 사랑과 책임으로 묵묵히 보듬는다.
탁란은 또한 사회적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을 본다. 마치 자신의 둥지에 남의 알을 몰래 두는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모습이다. 회사에서는 동료의 노력을 가로채거나, 공동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일이 있다. 이런 모습들은 인간 사회 속의 '탁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결국 신뢰를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균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대로, 우리는 누군가의 삶에 기꺼이 ‘탁란의 둥지’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대신 짊어지고, 타인의 부담을 나눠 가지는 것이다. 부모가 아닌 이가 부모처럼 돌보는 모습, 혈연이 아닌 관계 속에서도 가족 이상의 사랑을 주는 사람들. 이는 탁란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사랑과 책임의 모습이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없음에도,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이들의 모습은 탁란과 달리 아름답다.
탁란은 자연의 생존 전략이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관계와 책임의 본질을 되묻게 한다. 우리는 종종 남의 둥지에 알을 낳거나, 혹은 남의 알을 키우는 존재로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진정한 책임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남의 부담을 떠안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더 큰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때로는 탁란의 둥지가 되어 타인을 품고, 때로는 스스로의 둥지를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탁란은 단순한 기생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다양한 모습과 관계의 복잡성을 상징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삶 속에 의도치 않게 혹은 의도적으로 들어가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탁란이라는 자연의 현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를 돌아보고, 진정한 사랑과 책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