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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 '초 한 대'를 청람 평하다

김왕식







초 한 대




시인 윤동주





초한 대ㅡ
내 방에 품긴 흉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 12, 24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시 '초 한 대'는 단순한 촛불의 묘사를 넘어, 희생과 정화의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내면적 성찰과 신앙적 인식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바라보며, 그 빛이 자신의 삶과 신념을 어떻게 비추는지를 깊이 고민한다.
1934년 12월 24일, 성탄절 전날에 쓰인 이 시는 종교적 상징과 순결한 희생의 이미지를 통해 윤동주의 가치철학을 짙게 드러낸다.

시의 첫 연에서 '초한 대'는 단순한 촛불이 아니라, 방 안에 스며든 그윽한 향과 함께 존재감을 갖는 신성한 존재로 형상화된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광명의 제단'과 '깨끗한 제물'이라는 기독교적 이미지를 통해 희생의 신성을 강조한다.
특히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과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라는 구절은 촛불이 단순한 빛이 아니라, 생명을 불태우는 희생적 존재임을 강렬하게 형상화한다. 이는 그가 강조한 순결한 삶과 윤리적 실천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윤동주의 문학적 미의식은 이러한 상징과 이미지의 조화로운 배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촛불이 타오른 후에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라는 표현은 희생이 남긴 흔적이 신비롭게 지속됨을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영적인 승화의 과정으로 읽힌다. 마지막 연에서는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라는 비유를 통해 암흑이 도망하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이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열망을 반영한다.

윤동주의 가치철학은 '희생'과 '순결', '빛'이라는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그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이 의미 있는 정화 과정이 될 수 있음을 시로 형상화한다. 이는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윤리적 태도이자, 나중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 신념이다.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그는 자신을 불태워 빛을 밝히는 존재가 되고자 했으며, 그것이야말로 그의 문학적 미의식과 삶의 철학을 관통하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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