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 한 대

김왕식










초 한 대




김왕식





가슴 한복판에 불이 붙었다
작은 심지가 타들어 가며
어둠을 향해 빛을 내민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이
속으로만 흐르는 맑은 눈물

그 눈물은 뜨겁지 않다
오직 부드럽게 번져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자
그 작은 빛을 따라 걸어간다

타들어 간 몸, 재가 되어도
그가 밝은 곳에 닿았으니
이것이 기쁨이 아니겠는가






자작시 해설
ㅡ초 한 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시 '초 한 대'는 윤동주 시인의 동명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쓰였다. 윤동주의 '초 한 대'는 희생과 정화, 신앙적 순결함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촛불이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몰아내는 과정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본 시 또한 그 중심 사상을 계승하며, 촛불이 가지는 희생적 본질을 더욱 직접적이고 응축된 형태로 표현하고자 했다.

첫 연은 촛불이 타오르는 순간을 묘사하며 시를 시작한다. "가슴 한복판에 불이 붙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촛불이 타오르는 현상을 넘어, 그것이 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 불꽃임을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외부적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와 신념에서 시작된 희생임을 나타낸다. 촛불은 "작은 심지가 타들어 가며 어둠을 향해 빛을 내민다." 작은 존재이지만, 어둠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을 지닌다. 이는 윤동주의 원작에서 강조된 ‘희생적 삶의 자세’를 시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두 번째 연에서는 희생의 조용한 방식이 강조된다.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이 속으로만 흐르는 맑은 눈물"이라는 구절은 촛불이 자신을 태우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희생하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이는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 담긴 침묵 속의 희생, 즉 조용하지만 깊은 내면적 고통을 품고 있는 존재의 태도와도 연결된다.

세 번째 연은 촛불의 눈물이 갖는 의미를 더욱 확장한다. "그 눈물은 뜨겁지 않다 / 오직 부드럽게 번져 /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촛불은 자신이 태우면서도, 그 눈물은 타인의 길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이는 윤동주의 시가 가진 "희생을 통한 타인의 구원"이라는 철학적 메시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눈물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헌신이며, 그로 인해 누군가의 길이 환해지는 순간이 된다.

네 번째 연에서는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자 / 그 작은 빛을 따라 걸어간다." 여기서 촛불의 역할이 더욱 구체화된다. 희생을 통해 타인의 길을 밝혀주는 것이 바로 촛불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는 윤동주의 시에서도 나타나는 신념으로, 작은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 길을 인도하는 빛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담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촛불의 희생이 궁극적으로 완성된다. "타들어 간 몸, 재가 되어도 / 그가 밝은 곳에 닿았으니 / 이것이 기쁨이 아니겠는가." 희생은 소멸이 아니라, 누군가가 밝은 곳에 도달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승화된다. 윤동주의 원작에서도 촛불이 사라지지만 남겨진 빛의 의미가 강조되듯, 본 시 역시 희생의 끝에서 기쁨을 찾는다. 자신을 태워 타인을 비춘 것이 허무한 소멸이 아니라, 타인이 밝은 곳에 이를 수 있도록 한 가치 있는 행위였기에, 촛불은 비록 사라지더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요컨대, 이 시는 윤동주의 '초 한 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희생을 단순한 고통이 아닌 기쁨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냈다. 촛불의 존재는 작고 연약하지만, 그 빛이 타인을 밝혀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는 윤동주의 가치철학과도 맞닿아 있으며, 희생을 통해 완성되는 삶의 숭고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동주 시 '초 한 대'를 청람 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