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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아침을 노래하리

김왕식







8월의 아침을 노래하리





정용애






이름 모를 잡초마저 푸르게 빛나는 이곳,
주님의 은혜를 입고 새 생명의 기쁨을 노래한다.
산과 들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었고,
이제는 이곳이 나의 집이 되었다.
흙을 일구고 씨앗을 심으며,
푸른 꿈을 펼치기를 기도한다.

오랜만에 몸빼바지를 챙겨 입고 텃밭에 나선다.
낙엽을 태우고, 돌을 고르고, 땅을 고른다.
고구마, 옥수수, 고추, 수박, 참외까지 가지런히 심어 놓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한편에는 꼬꼬닭집도 지었다.
하룻밤 사이 푸릇푸릇 자라나는 채소를 보며
땅은 거짓이 없음을,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날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며 하루가 훌쩍 지난다.
그런데 어느 날, 밭일에 지쳐 늦잠을 잤다.
그때였다.

쿵쿵, 땅이 울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진동에 방바닥이 흔들렸다.
아랫방에 손녀딸이 자고 있고,
남편은 일터에 나갔다.
‘오매, 이거 전쟁이 난 거 아니여?’
당황한 나는 기어가듯 밥상 다리를 붙잡았다.
심장이 뛰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소리가 잦아들 무렵,
화장실 유리창을 살짝 열어보았다.
커다란 탱크가 깃발을 휘날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한 군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놀란 나는 황급히 창문을 닫아버렸다.
그제야 밖을 둘러보니
이웃들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이 아니었다.

"그래도 탱크가 지나가면 지나간다고 방송을 해줘야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남편을 기다렸다.
저녁 무렵, 남편이 돌아와 말했다.
"산 아래 군부대가 있어서 훈련 나가는 거야.
삼 일 후면 또 내려올 거야."

과연 삼일 후,
쿵쿵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핸드폰을 꺼내 박 권사님께 소리를 들려드렸다.
그분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아들 면회 가서 탱크 본 적 있어."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내게는 딸들만 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부럽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아들이 있는 집이
살짝 부러웠다.

그러나,
그 감정이 이내 스르르 스며들었다.
마치,
이 여름날 푸르게 자란 밭처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용애 작가의 삶은 본질적으로 자연과 맞닿아 있다. 바다를 품은 섬에서 자란 작가는 육지의 삶을 맞이하며 모든 것을 새롭게 경험한다. 그녀에게 세상은 낯설고도 경이롭다.
낯섦 속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자연과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그녀의 문학적 가치관을 형성한다.

이 글에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지향점은 자연에 순응하며 주어진 삶을 긍정하는 태도이다. 섬 소녀였던 작가는 육지의 넓은 들녘과 산의 푸르름, 땅을 일구는 노동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과정에서 "땅은 거짓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그녀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노력하고 기다리는 것, 그리고 삶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그녀가 견지하는 인생관이다.

또한, 글에서 중요한 정서는 '경이로움'이다. 처음 텃밭을 일구며 느낀 기쁨, 그리고 매일 새롭게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는 놀라운 경험이다. 심지어 예상치 못한 탱크 소리조차 처음에는 공포로 다가오지만, 이내 현실을 이해하고 나서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그녀의 미의식은 '낯섦 속에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포착하는 데 있다.

문체는 담백하면서도 서정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자연을 노래하듯 담담하게 기록하면서도, 곳곳에서 삶에 대한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다. 특히 결말에서 "처음으로 아들이 있는 집이 부러웠다"는 문장은 작가의 정서를 절제된 표현으로 전달하면서도 강한 여운을 남긴다. 이는 감탄이나 감정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하여 사유하는 깊은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정용애 작가의 글이 보여주는 미의식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삶, 그리고 낯선 것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그녀의 문학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변화하는 삶을 긍정하고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하는 태도에서 빛을 발한다.

"낯설지만, 결국 익숙해진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노래하는 8월의 아침, 그리고 삶의 가치가 아닐까.






정용애 작가님께





작가님의 글 '8월의 아침을 노래하리'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의 시골 생활 적응기인가 했지만, 읽어 내려갈수록 단순한 적응의 기록이 아니라,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 그리고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깊은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섬에서 자라셨다고 하셨지요. 바다가 아닌 육지, 늘 보아오던 풍경이 아닌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낯섦과 경이로움이 글 곳곳에 배어 있었습니다. "이곳이 나의 집이 되었으니"라는 문장에서, 이제는 이 땅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작가님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변화들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밭을 일구며 "땅은 거짓이 없다"는 깨달음을 얻으신 대목이 참 좋았습니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며, 언젠가 그것이 자라 열매를 맺는 과정 속에서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나아가 삶의 원리를 깨달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하루하루 애쓰고 가꾸는 삶이 결국 어떤 형태로든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을요.

탱크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셨던 장면에서는 저도 함께 긴장하며 읽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밥상 다리를 붙잡고 계셨다는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 때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그 두려움을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너무나 사실적이고 공감되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에서 "아들이 있는 집이 처음으로 부러웠다"라고 하셨을 때, 가슴 한구석이 찡했습니다. 그 말속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을까요? 단순한 부러움이었을까요, 아니면 긴 시간을 지나오며 문득 떠오른 감상 같은 것이었을까요? 작가님께서 굳이 그 감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으셔서 더욱 여운이 남았습니다.

작가님의 글에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가는 태도가 묻어 있습니다. 삶은 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찾아오지만, 결국 우리는 거기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8월의 아침을 노래하리'는 그런 삶의 진리를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전하는 글이었습니다.

저 역시 살아가면서 낯선 환경을 맞닥뜨릴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두렵고, 때로는 적응하기 어려워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지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그 모든 변화가 결국에는 나의 일부가 되고, 또 다른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앞으로도 계속 삶을 기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자연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글 속에 담아 주시기를요. 따뜻한 이야기, 그리고 담백한 문장 속에서 독자들은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고, 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것입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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