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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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휠휠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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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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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을 나와 캠퍼스 거리를 걷다 보니, 오늘 발표해야 할 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박두진의 '해'.
교수님께서 이 작품의 문학적 가치와 시대적 배경을 깊이 있게 분석해 보라는 숙제를 주셨지만, 정작 달삼이는 그 해의 의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달삼이는 곧장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을 찾아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는 여전히 따뜻한 정취를 품고 있었다. 교무실 문을 들어서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웬일이냐?”
고등학교 때 문학을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께서 반갑게 달삼이를 맞아주셨다.
“스승님, 저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내일 박두진 시인의 '해'를 발표해야 하는데, 시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은사님은 미소를 짓고는 달삼이에게 앉으라고 권하셨다. 차 한 잔을 내어 주신 후,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래, 참 좋은 시를 맡았구나. '해'는 한국 현대시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지. 어디부터 궁금하냐?”
달삼이는 서둘러 질문 노트를 꺼냈다.
“시의 첫 구절에서 ‘해야 솟아라’라는 외침이 반복됩니다. 단순히 해가 뜨는 장면을 묘사한 걸까요?”
은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드셨다.
“좋은 질문이다. 이 시에서 ‘해야 솟아라’는 단순한 해의 출현을 의미하지 않는다. 해는 생명의 근원이자 희망의 상징이며, 어둠을 몰아내는 존재로 등장하지. 시인은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라고 했는데, 이 표현에는 단순한 해의 빛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순수한 희망의 의미가 담겨 있지.”
달삼이는 노트에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그렇다면 ‘어둠을 살라 먹고’라는 표현도 단순한 밤과 낮의 교체를 뜻하는 게 아니겠네요?”
“그렇지. 여기서 어둠은 슬픔과 절망, 더 나아가 식민지 시대의 억압까지 상징한다고 볼 수 있네. 해가 떠오른다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 아니라, 억압을 태워 없애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것을 의미하지.”
달삼이는 문득 시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2연이 떠올랐다.
“그런데 2연에서는 ‘달밤이 싫여’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보통 달밤은 운치 있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왜 시인은 달밤을 싫다고 했을까요?”
은사님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으셨다.
“좋은 질문이다. 보통 달은 아름다움과 감성을 자극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이 시에서 달밤은 ‘눈물 같은 골짜기’와 ‘아무도 없는 뜰’과 함께 등장하지. 이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강조하는 장면이지. 달빛이 비치는 밤은 정적이고 고독한데, 시인은 그런 분위기를 거부하고 싶었던 거야. 해처럼 활기차고 희망찬 세상을 원했던 것이지.”
달삼이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부분을 다시 떠올리며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고 보니 3연에서는 해가 떠오르면 ‘나는 청산이 좋아라’라고 합니다. 청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청산은 자연의 상징이자, 속세를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으로 해석할 수 있지. ‘휠휠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라는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시인은 해가 뜰 때 비로소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어 하지. 이는 단순한 자연에 대한 동경이 아니라,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열망이 담긴 것이야.”
달삼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4연에서 사슴과 칡범을 따라가는 장면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연결될까?
“그렇다면 4연에서 사슴과 칡범을 따라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은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하셨다.
“사슴은 순수하고 평화로운 존재로 이상적인 삶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네. 반면, 칡범(호랑이)은 강하고 위협적인 존재지만, 동시에 자연의 일부지. 시인은 사슴을 따라가서 놀고, 호랑이를 따라가서 어울린다고 했어. 이는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을 동경하는 장면이지. 즉, 두려움 없이 자연 속에서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루고 싶다는 염원이 담긴 것이네.”
달삼이는 마지막 연을 떠올린다.
“마지막 연이 참 인상 깊어요.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로 다시 해를 부르면서, 해가 뜨면 꿈이 아니더라도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하잖아요. 이 부분이 시의 핵심인가요?”
은사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해가 떠오르는 순간, 모든 존재가 조화를 이루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지. 여기서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라는 부분은 해방의 기쁨을 나누는 외침으로도 읽을 수 있어. 시인은 해를 통해 인간과 자연, 모든 생명이 함께 어울리는 이상향을 그리고 있지.”
달삼이는 마침내 이 시가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라, 희망과 자유를 노래한 시라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해야 솟아라'는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라, 해를 통해 희망과 자유를 노래한 시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정확하게 봤네. 박두진은 해를 통해 어둠을 몰아내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었지. 그의 시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우리에게 희망과 자유를 이야기하고 있네.”
달삼이는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를 덮었다.
“스승님 덕분에 이 시가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은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즐거웠네. 좋은 시를 만날 때마다 깊이 사유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보게나. 그러면 시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네.”
달삼이는 문밖으로 나와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태양이 구름 사이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박두진의 외침처럼, 해야 솟아오르고 있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