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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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들어서
시인 정 순 영
두세 사람이
아침마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더니
세상 옷을 벗고 산에 들어서
*무위無爲를 얻고자 나무로 섰다네.
그중 어떤 나무는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더니
나무의 옷을 벗고
*무극無極을 얻어 천국으로 갔다네.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빛의 목소리가 여명黎明의 숲을 메아리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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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無爲-자연에 따라 행위하고 사람의 생각이나 힘을 더하지 않는 것.
*무극無極-끝이 없음.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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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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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영 시인의 '산에 들어서'는 인간이 세상의 옷을 벗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궁극적으로 신과의 합일을 이루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는 ‘산에 오르기’를 일종의 수행의 과정으로 그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이 세속적 가치에서 벗어나 ‘무위(無爲)’와 ‘무극(無極)’을 얻어가는 노정을 담담한 어조로 표현한다.
특히 기독교적 신념과 동양 사상의 접점을 절묘하게 포착하며, 인간의 내적 성찰과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정순영 시인의 작품 세계는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영적 구원을 향한 지향점 속에서 형성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연 찬미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정신적 경지를 탐색한다. '산에 들어서'에서도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 연에서는 ‘두세 사람’이 매일 아침 산에 오르는 모습을 묘사하며, 이는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정신적 수련의 의미를 갖는다.
이들은 세속적 삶을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무위(無爲)’를 얻고자 나무가 된다. 무위는 도가 사상에서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을 의미하지만, 시인은 이를 기독교적 맥락에서 변주變奏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삶’으로 재해석한다. 자연과 일체가 되는 것은 곧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의미하며, 여기서 시인의 신앙적 가치관이 드러난다.
둘째 연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나무가 등장하는데, 이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언급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를 연상케 한다.
이 나무는 단순히 무위를 체득하는 것을 넘어 ‘무극(無極)’, 즉 영원의 세계로 나아간다. 무극은 일반적으로 끝없는 우주의 이치를 의미하지만, 시인은 이를 천국과 동일시하며 기독교적 구원의 의미를 담아낸다. 결국, 무극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비우고 신과의 교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궁극적 구원이다.
마지막 연은 이 시의 핵심 메시지를 강조한다. ‘빛의 목소리’가 여명의 숲을 메아리친다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연을 통해 울려 퍼지는 순간을 상징하며,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는 성경 구절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시 전체를 기독교적 구원의 서사로 완성한다.
여기서 ‘빛’은 신적 존재이며, 여명黎明은 어둠에서 벗어나 구원의 빛을 맞이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이러한 장면 연출은 신앙의 체험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시의 분위기를 숭고하게 마무리한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절제된 언어와 간결한 구성으로 깊은 철학적 울림을 전달한다. 특히 시인은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이 구원에 이르는 길로 설정하며, 산과 나무를 상징적으로 활용한다. ‘나무로 섰다’라는 표현은 인간이 자연과 동화되는 과정을 형상화하며, 이는 한편으로 수도자의 수행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심령이 가난하다’는 구절을 통해 시인은 인간이 신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비움과 낮아짐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종교적 상징은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인 깊이를 더하며, 시를 단순한 자연 서사에서 한층 높은 차원의 구원 서사로 확장시킨다.
마지막으로, 성경 구절의 직접 인용은 신앙적 확신을 강조하면서도, 시 전체의 흐름을 신비롭게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 속에서 메아리치는 빛의 목소리는 독자로 시공간을 초월한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하게 하며, 이는 단순한 시적 감상에서 벗어나 신앙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요컨대, 정순영 시인의 '산에 들어서'는 자연 속에서 인간이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철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인은 기독교적 신앙과 동양적 사상을 조화롭게 융합하여 인간 존재의 궁극적 의미를 탐색하며, 이를 통해 자연이 단순한 휴식처가 아니라 영적 수련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시의 미적 가치는 절제된 언어, 상징적 이미지, 그리고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나무’와 ‘빛’이라는 중심 이미지를 통해 인간이 비움과 낮아짐을 통해 신과 합일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신앙의 힘이 인간을 구원으로 이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자연과 신앙, 존재와 구원의 문제를 시적 형상 속에서 깊이 있게 탐색하는 이 작품은, 정순영 시인의 가치철학과 미의식을 대표하는 시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