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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방

김왕식



이 글은

심광일 동시ㆍ동요 작가의

'빈집 내방'이라는 동시를 읽고

동화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빈 방




청람 김왕식






달삼이는 문 앞에 섰다.
낮인데도 어두운 방 안, 인기척이 없었다.

달삼이는 조심스레 방문을 밀었다.

끼익— 작은 방 안에는 오직 그의 숨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병원에 계시고, 아빠는 회사를 다녀가며 병원을 오갔다. 동생은 이모네 집에 맡겨졌다. 달삼이는 집에 혼자 남았다. 늘 가족의 온기가 가득했던 방이 갑자기 사막처럼 넓어지고, 자신은 콩알만큼 작아진 기분이었다.

"엄마..."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달삼이는 엄마가 베고 자던 베개를 끌어안았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 같았다. 하지만 오래 안고 있을수록 그 온기가 사라지는 것 같아 두려웠다.

달삼이는 불을 켰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희미한 빛이 벽에 스며들었지만, 마음속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창문 너머로 해가 떠 있었지만, 달삼이의 세상은 해가 진 것처럼 싸늘했다.

"어매, 왜 이렇게 춥냐..."

달삼이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찬바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괜히 냉장고를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평소에는 금방 차려주던 밥상이 없었다. 배고픔보다 허전함이 더 컸다.

그때, 문이 덜컹거렸다.

"아빠?"

달삼이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아빠가 아니라, 옆집 할아버지, 박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달삼아, 혼자 있나?"

"예."

"그래, 밥은 묵었어?"

달삼이는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박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고는 주머니에서 작은 주먹밥을 꺼냈다.

"이거라도 묵어라. 니 혼자 있응게, 걱정이 되야."

달삼이는 얼떨결에 주먹밥을 받았다.

따뜻했다.

한입 베어 물자 소금 간이 딱 맞아 엄마가 해주던 밥맛 같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달삼이는 꾹 참았다.

"할아버지, 혼자 있응게 무섭다..."

"그렇지, 그럴 게다. 혼자 있는 방은 더 넓어지고, 사람 하나 없응게 어둡고 그렇제?"

달삼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 할아버지는 말없이 달삼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날 밤, 달삼이는 불을 켰지만 어둠은 여전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방 안에 있으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에는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렸다. 시골 마을은 밤이면 조용했다. 그런데 저 멀리,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박 할아버지?"

달삼이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 뭐 하세유?"

"음, 걷고 있제."

"이 밤에요?"

"그래야, 혼자 있는 방은 자꾸 어두워지거든. 나도 예전엔 방구석에만 있었는디, 그러면 더 어둡고 더 무서워지더라고. 근디 밖에 나오면...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걸 알게 되제."

달삼이는 조용히 할아버지 곁에 섰다.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달이 참 밝네유."

"그렇지?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달은 떠 있응게. 혼자 있응게 외롭고 무서운디, 그럴수록 더 나가야 혀. 혼자 있는 게 무서우면, 달삼아, 그냥 밖으로 나와. 걷다 보면 알 게다. 우린 혼자가 아니라는 걸."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속 깊이 박혔다.

그날 이후, 달삼이는 혼자 있는 게 두렵지 않았다. 방 안에서 어둠이 밀려오면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걷고,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엄마가 없는 집은 여전히 허전했지만, 그 허전함 속에서도 온기를 찾을 수 있었다.

몇 주 후, 엄마가 퇴원하셨다. 아빠는 더욱 바빠졌지만, 달삼이는 더 이상 방 안에서 움츠러들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도 받아들이고, 때로는 박 할아버지와 함께 걷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 할아버지가 말했다.

"달삼아,
니는 참 강한 아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방 안에서 콩알만큼 작아졌던디,
이제는 안 그렇제?"

달삼이는 빙그레 웃었다.

"예. 그래유. 이제 혼자 있는 것도 괜찮아유. 혼자 있는 게 꼭 외로운 건 아니잖아유. 하늘에 달도 떠 있고, 바람도 있고, 할아버지도 계시고... 아, 엄마도 곧 오시구유."

박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팡이를 짚었다.

"그래야.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게 중요혀."

그해 겨울, 박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달삼이는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편안하게 가셨다’고 말했지만, 달삼이에게 박 할아버지는 너무나 큰 존재였다.

어느 날, 달삼이는 문득 박 할아버지의 집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닫힌 채, 빈집이 되어버린 집. 그리고 방 안.

‘이제 이 방도 점점 넓어지겠지... 콩알만큼 작아지겠지...’

그때, 달삼이는 박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달삼아,
방 안에서 무섭거든
밖으로 나오거라.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다."

달삼이는 조용히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 앞에 작은 등불 하나를 놓아두었다.

밤이 깊어졌다.
저 멀리, 달이 떠올랐다. 마치 박 할아버지가 달삼이를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달삼이는 박 할아버지처럼 마을 길을 걸었다. 달빛이 길을 비추었다.

어둠은 깊었다,

여전히 빛은 남아 있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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