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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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솜이불 사랑
시인 유숙희
쓸 수도 버릴 수도 없어
운명처럼 함께
살아야 했던
늘 애틋하면서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한 죄
고희古稀에 뉘우치니
엄동설한嚴冬雪寒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주네
딸 시집보낼 때
직접 목화송이 틀어서
집안 아줌마들이 함께 만드신
새색시 목화솜이불
푹신푹신 부푼 솜처럼
새 삶의 기대 속에
언제부턴가
세월이 흐르면서 골방신세,
무용지물 목화 이불솜
못 입는 한복으로
잇고 이어 세상에
둘도 없는
이불을 만드니,
그 귀함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옴은 손수 지어주신
손길의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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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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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은 일상의 사물 속에서 삶의 철학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능한 시인이다. '목화솜이불 사랑' 역시 단순한 물건이 아닌, 한 시대의 정서와 가족의 애환,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해가는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이불이라는 소재를 통해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뒤늦게 깨닫는 소중함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삶의 가치를 반추하는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이 시는 크게 두 개의 층위에서 의미를 구축한다. 첫 번째는 ‘목화솜이불’이 가지는 실질적인 역할과 세월 속에서의 변화이다. 과거에는 가족이 함께 손수 만들어 딸에게 전해주었던 귀한 존재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쓸모를 잃고 골방에 처박히는 운명을 맞이한다. 이 장면은 그저 물건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정서적 가치, 그리고 삶의 방식의 변화를 상징한다.
두 번째 층위는 ‘사랑’에 대한 성찰이다. 화자는 ‘운명처럼 함께 살아야 했던’ 이불을 통해, 늘 곁에 있었으나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던 대상에 대한 회한을 드러낸다. 이는 물건에 대한 감정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가족과의 관계, 부모의 희생, 혹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 뒤늦게나마 그 가치를 깨닫고 손수 한복을 이어 만든 ‘둘도 없는 이불’을 통해, 지나간 사랑을 되새기고 감사함을 표현하는 과정은 깊은 감동을 자아낸다.
이러한 작품 세계는 유숙희 시인의 철학적 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물질적 가치를 넘어, 사람과 사물의 관계를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한다.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쌓여가는 것이며, 때로는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사라져 가는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자 한다. 무용지물이 된 목화솜이 다시 귀한 이불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단순한 재활용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과 정서를 되살리는 행위이며,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잊혀가는 ‘기억의 재구성’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목화솜이불 사랑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가 연결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다시 되찾아야 할 가치에 대한 시적 성찰이라 할 수 있다. 삶 속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지켜가야 하는지를 곱씹게 하는 작품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