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말, 글, 그리고 파장'
김철삼 교수
친구와 통화하다가 “파장을 느낀다”는 말을 들었다.
소통의 맥락을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는 파장을 다 느낄 수 있어.”
그 말이 머리에 단단히 박혔다.
파장이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눈앞의 단어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울림,
기류처럼 스쳐 지나가며 마음을 흔드는 진동.
살아오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파장을 마주했을까?
그 모든 것을 제대로 감지하고 이해했을까?
혹은, 엉뚱한 해석으로 파장의 결을 왜곡한 적은 없었을까?
파장은 분명 존재한다.
단지 감각으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논리보다 더 명확하게 감정을 전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학생들의 논술 답안을 읽을 때 그렇다.
백 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동일한 문제를 내어도
그들의 글은 하나하나 다르게 다가온다.
글을 읽다 보면 그 문장들 속에 숨은 미세한 떨림,
의도하지 않았지만 묻어나는 학생들의 고민과 기질이 느껴진다.
문장 하나하나가 파장을 품고 있다.
분명히 같은 교재를 읽고, 같은 강의를 들었을 터인데
어떤 학생의 글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단하고,
어떤 글은 부드러우면서도 망설임이 엿보인다.
누군가는 논리를 앞세우고,
누군가는 감성을 먼저 꺼내 놓는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분명히 정해진 해답이 있는 문제인데도,
각자의 파장이 문장 속에서 어른거린다.
이는 단순한 해석의 차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고,
어떤 경험을 했으며,
어떤 사고방식을 지녔는지를 암시하는 미묘한 흔적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전류처럼, 글 속에서 은근히 전해진다.
말도 그렇다.
우리는 흔히 말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은 그 말이 실리는 파장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같은 말을 해도 그 톤과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미세한 떨림 하나, 멈칫하는 순간,
그곳에 언어를 초월한 감정의 전류가 흐른다.
그것이 바로 파장이다.
때때로 말보다 침묵이 더 강한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
상대가 아무 말 없이 눈을 돌릴 때,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
그 순간에 오히려 더 큰 파장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문장은 형체를 가졌지만, 파장은 형체를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강력하다.
과거의 어느 날, 한 학생이 찾아왔다.
그날따라 표정이 어두웠고, 그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있었다.
그 학생은 조용히 내 책상 위에 답안지를 올려놓았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속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단순한 논술 문제가 아니었다.
그의 문장 사이사이에는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고민이 묻어 있었다.
차마 말로 꺼내지 못한 외로움,
그리고 그 안에서 찾으려 했던 해답이 있었다.
나는 답안지를 다 읽은 후,
그 학생을 향해 짧은 말을 건넸다.
“글이 참 진솔하구나.”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조금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내 말보다도, 그 말이 실린 파장이
그에게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말과 글, 그리고 파장.
언어는 단지 발화된 소리나 쓰인 문장이 아니라,
사람이 빚어내는 울림이며 흔적이다.
그 진동은 공기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서 다른 마음을 두드린다.
어떤 이는 말로 세상을 움직이고,
어떤 이는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때로는 단 한 문장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도 있다.
그만큼 파장은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말과 글, 그리고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떤 파장으로 다가갈지를 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파장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가 보내는 말들이 누군가의 가슴에 어떤 울림을 남길지,
또는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파장은 보이지 않지만 강한 힘을 가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욱 예민해야 한다.
앞으로는 내 말이 일으키는 파장에 더욱 귀 기울여야겠다.
내가 무심코 흘려보낸 단어들이
어떤 물결을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세상에 가득한 보이지 않는 파장들을
놓치지 않도록 마음을 열어야겠다.
특히, 말 없는 이들의 파장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김철삼 교수의 '말, 글, 그리고 파장'은 언어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진동과 흔적을 남기는 파장임을 강조하는 글이다. 작가는 말을 초월한 감각적 교감을 중시하며, 언어가 형체를 가지지 않은 채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는 그의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소통을 단순한 대화 이상의 존재로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람의 내면과 감정을 읽어내는 것에 가치를 둔다.
작품에서 강조되는 핵심은 ‘파장의 존재’이다. 이는 논리적 사고와 감각적 교류의 중간에 놓여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말과 글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특히 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묻어나는 고민과 기질’을 감지하는 경험은, 작가가 언어를 단순한 표면적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글에 스며든 미세한 떨림과 흐름을 통해 개인의 삶과 사고방식을 읽어내고자 한다.
이는 그의 미의식에서도 드러난다. 문장을 분석할 때 기교나 완결된 의미보다 그 속에서 흐르는 감정과 흔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돋보인다.
또한 작가는 말과 글이 어떻게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섬세하게 설명하며, 때로는 침묵이 더 깊은 울림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그의 삶의 가치관과 연결된다. 즉, 그는 단순히 많은 말을 하거나 화려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대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교육관과도 맞닿아 있다. 학생들의 논술 답안을 읽으며 그들의 삶과 내면을 이해하려 하고, 때로는 단 한마디의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한다. 이는 ‘말보다 말이 실린 파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그의 통찰과도 연결된다.
작품 미의식에 있어서도, 김철삼 교수 언어의 미세한 결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의 문장은 직관적이고 간결하지만, 그 속에는 파장이 깃들어 있다. ‘눈빛의 흔들림’과 같은 감각적 요소를 통해 언어가 초월하는 순간을 포착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글이 지닌 울림의 힘을 탐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요컨대, '말, 글, 그리고 파장'은 김철삼 교수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반영한 작품이다. 그는 언어를 기계적인 도구로 보지 않고, 그 속에서 흐르는 감정과 흔적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한 말과 글이 어떤 파장을 남길지를 늘 고민하며, 세상을 더욱 깊이 바라보려는 태도를 지닌다.
이는 단순한 글쓰기나 말하기 기술을 넘어,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며, 독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지하고 더욱 섬세한 감각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