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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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 해변의 노래
청람 김왕식
저녁노을이 바다 위로 붉게 번진다. 을왕리 해변,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가 부드러운 리듬을 만든다. 그 바닷바람 속, 한 청년이 기타를 들고 선다. 청년의 앞에는 가지런히 놓인 작은 의자들. 마치 유치원생이 앉음직한 앙증맞은 크기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다. 몸집이 큰 어른들. 그들은 마치 엉덩이를 반으로 접어놓은 듯 불안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다. 그래도 모두가 편안한 듯하다. 음악이 시작되는 순간, 불편한 자세 따위는 잊힌다.
청년은 이목구비가 수려한, 말 그대로 꽃미남이다. 그의 가장 빛나는 점은 얼굴이 아니다. 한 마디 첫 소절이 터져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삼킨다. 그의 음색은 맑고 깨끗하다. 마치 새벽 이슬이 살짝 맺힌 풀잎 위를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김광석과 윤종신의 곡들이다. 익숙한 선율이 해변 위로 퍼져나간다.
원곡과는 다르다.
원곡 가수들의 목소리가 감성의 파도라면, 그의 목소리는 그 위를 잔잔히 흐르는 빛이다. 같은 노래지만,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 낸다.
관객들은 그의 목소리에 온전히 빠져든다. 어떤 이는 눈을 감고, 어떤 이는 미소를 짓는다. 한쪽에서는 연신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며 이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도 있다. 바람은 그의 머리칼을 살짝 어지럽히고, 바다 내음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그의 노래는 단순한 버스킹이 아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작은 선물 같은 순간이다.
어느새 노을이 더 짙어지고, 하늘이 서서히 어둠을 받아들인다. 바다는 여전히 같은 속도로 숨을 쉬고, 사람들은 마지막 노래의 여운에 젖어 있다. 청년은 마지막 곡의 끝자락을 길게 늘여 부른다. 그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짓는다. 박수가 터져 나온다. 청년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의자에 걸터앉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난다. 누구도 쉽게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 순간이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주길 바라는 듯, 한동안 그대로 머물러 있는다.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파도를 보내고, 청년은 기타를 정리한다. 해변은 다시 평온해진다. 이곳에 있던 사람들 마음속에는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잔잔히 울리고 있다.
ㅡ 청람
https://youtube.com/shorts/4SYhTcPsrQo?si=Ce0jSKeApiIOXm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