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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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봄, 봄
시인 유숙희
지난밤 별똥별이
내 뜨락에 떨어지며 봄꽃들 지고 왔구나
온갖 꽃들 밤새 와서는
저마다 향기로 색으로
형태로 출렁이는,
함께 물들고 싶어
노오란 수선화 화분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정호승시인의
'수선화에게' 詩가
떠 오르고 읊던 기억이
새싹처럼 돋아나
마음밭은
금세 수선화가 만발하다
하루는 산수유꽃
진달래 꽃으로 물들고
또 하루는
강진에 동백꽃, 모란꽃
소식에
김영랑시인이
함께 하는 찬란한
봄, 봄, 봄결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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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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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숙희 시인은 참 부지런하다.
한 손에 바늘, 또 한 손엔 펜!
이번 시도 봄을 자세히도 봤다.
보고, 보고, 또 보고! 하여 봄을 세 번이나 외쳤네.
시 '봄, 봄, 봄'은 계절의 순환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내면의 감성과 시적 추억이 어우러진 ‘감각의 재현’으로 승화시키는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뜨락에 별똥별이 떨어졌다는 몽환적인 장면으로 시작하여, 그것이 곧 봄꽃의 도래임을 알리는 ‘은유적 시선’을 제시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인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노오란 수선화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 행위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삶에 봄을 초대하는 의식이다.
이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떠올리게 하며, 시인은 그 기억의 싹이 마음밭에 돋아나는 장면을 통해 과거의 시적 체험을 현재의 감성으로 다시 피워낸다. 문학이 단절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시인의 미의식이 은은하게 깃들어 있다.
작품 말미에는 강진의 동백과 모란 소식을 언급하며 김영랑 시인을 떠올린다. 이는 봄의 찬란함이 단지 자연의 축제가 아니라, 한국 시문학의 전통과 정신과도 닿아 있음을 암시한다.
봄은 감각의 계절일 뿐 아니라 시인의 기억과 감성, 문학적 DNA가 되살아나는 시간이다. 유숙희 시인의 시는 개인적이면서도 시대와 문학을 넘나드는 ‘공감의 미학’을 담고 있다.
그녀의 시는 한 송이 꽃을 보며 시인을 떠올리고, 한 줄의 시를 읊으며 계절을 환기시키는 ‘삶과 시의 교감’이 얼마나 순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조용히 속삭인다.
요컨대, 이 작품은 자연, 기억, 문학, 감성의 사중주로 완성된 찬란한 ‘봄’의 찬가이며, 삶을 시처럼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철학적 태도를 엿보게 하는 따뜻한 시적 기록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