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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의 속삭임

김왕식









봄비의 속삭임






봄비가 창문을 두드린다.
말없이 다가와 조용히 귓가에 속삭인다. 밤새 추적추적, 그리움이 빗물에 섞여 내린다. 겉옷을 벗긴 나무 가지마다 봄이 스며들고, 잊고 있던 기억 한 조각이 물기를 머금는다.

비는 따뜻하다. 겨울 내 굳은 땅의 고요를 어루만지고, 언 마음의 곁을 스르르 녹여낸다. 마당의 들풀들은 저마다 얼굴을 씻고, 이른 아침의 빛을 기다리는 듯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에는 설렘이 묻어나고, 설렘에는 삶이 고요히 움튼다.

땅속 깊은 곳에 숨죽였던 생명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민다.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편지 봉투를 열듯 조심스럽고 애틋하다. 이름 없는 새싹조차 자기 몫의 시간을 기다려왔다고 말하듯, 조용히 세상을 향해 손을 뻗는다.

창밖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른다. 세상은 아직 충분히 따뜻하고, 이 봄비 한줄기에도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음을 믿는다. 모든 것이 젖고, 모든 것이 깨어나는 이 아침. 봄은, 그렇게 내 안에서도 다시 피어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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