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루의 저녁에 스며들며 ㅡ 자연인 최호 안길근

김왕식









청람루의 저녁에 스며들며



자연인 최호 안길근



청람루에서의 저녁은 조용히 내려앉는다.
노을빛이 골짜기를 부드럽게 덮으면,
하루 종일 분주하던 바람도 이제는 숨을 고른다.
햇살은 산등성이를 넘고,
풀잎마다 미세한 어둠의 떨림이 스민다.

이럴 때, 나는 책을 편다.
고요 속에서 만나는 활자들은
오랜 벗처럼 다가와 마음을 어루만진다.
생각은 조용히 흘러가고,
손끝에서는 한 줄씩 작은 문장이 자란다.
청람루의 저녁은 그렇게,
나를 읽고, 나를 쓰는 시간이다.

새들은 저녁 하늘을 스치듯 지나가고,
멀리서 졸음 섞인 물소리가 은은히 번진다.
바람은 종종걸음으로 창틈을 스치며
낡은 페이지를 슬쩍 들춰본다.
그 모든 소리들이
나의 고독을 둘러싼 다정한 동반자가 된다.

그러다,
서쪽 하늘에 붉은 깃발처럼 석양이 걸릴 즈음,
구구구, 비둘기 울음소리가 퍼진다.
그 소리는 마치 저녁의 마지막 숨결처럼,
고요를 더욱 깊게 퍼뜨린다.
석양과 비둘기 울음이 뒤섞여
저녁의 끝자락을 붉고 서늘하게 물들인다.

청람루의 저녁은 말이 없다.
대신 바람이 문을 두드리고,
별빛이 천천히 땅을 어루만진다.
나는 이 고요에 기대어 책을 읽고,
또 조심스럽게 나를 쓴다.

그리하여 이곳의 저녁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 숨 쉬는 작은 숲이 된다.


ㅡ 새벽을 깨우는 남자 최호 안길근











안최호의 '청람루의 저녁에 스며들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작가의 글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 거리는 단절이 아니라,
더 깊게 세상을 껴안기 위한 고요한 물러섬이다.
'청람루의 저녁에 스며들며'는
이 물러섬 속에서 길어 올린 투명한 삶의 기록이다.

청람루, 그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는 청람루라는 공간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시선,
시간을 견디는 마음,
존재를 대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바람, 물소리, 새소리, 석양, 비둘기 울음까지.
이 모든 것은 풍경이 아니라,
작가와 함께 숨 쉬는 존재들이며,
삶의 내면을 조용히 반영하는 거울들이다.

안최호 작가의 삶의 가치철학은 분명하다.
빠른 세상에서 느리게 걷기.
소란 속에서 고요히 머물기.
가득 채우기보다 비워두기.
그는 말한다.
삶은 성취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읽고 쓰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그의 미의식은 섬세하고 절제되어 있다.
화려한 언어를 거부하고,
일상의 작은 떨림들을 포착해 낸다.
햇살이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바람이 책장을 슬쩍 들춰보는 순간까지
그는 놓치지 않고 품는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정함이다.
청람루의 저녁은 고독하지만, 차갑지 않다.
외려 고요 속에서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나의 고독을 둘러싼 다정한 동반자들"이라는 표현은
그가 얼마나 삶을 부드럽게 껴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석양과 비둘기 울음의 메타포 또한 빼어나다.
"붉은 깃발처럼 걸린 석양"과
"저녁의 마지막 숨결처럼 퍼지는 비둘기 울음"은
시간이 머무는 장면을
아름답고 서늘하게, 그러나 생명력 있게 포착한다.

안최호의 '청람루의 저녁에 스며들며'는
하루의 끝자락에서
삶을 조용히 품어 안는 법을 가르쳐준다.
책을 덮는 순간,
읽은 것은 문장이 아니라,
자신의 숨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는 오늘도 조용히 삶을 읽고,
조용히 삶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그 고요한 문장들은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작은 숲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ㅡ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철학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