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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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의 품격, 굽은 등 뒤에 숨은 철학
태어날 때부터 등이 굽은 새우는 늙지 않는다.
애초에 꼿꼿한 적이 없으니, 늙을 여지도 없다.
허리를 펼 일도, 구부릴 일도 없이, 늘 굽은 채로 바닷속을 유유히 살아간다.
사람으로 치면 태생부터 겸손이 체화된 존재랄까.
자세를 낮춘 덕에, 자존심이 상할 일도 없다.
누가 뭐라든 "나 원래 이래"라며 유연하게 흐르는 생의 달인이다.
새우는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다.
조개껍데기 따위에 부딪혀도, 해파리의 촉수에 스치더라도
그의 등은 이미 단단히 훈련된 갑옷이니, 두려울 게 없다.
심지어 사람들이 “등 터진다”라고 걱정할 정도로 약자로 여겨지지만
사실 새우는 등 한 번 펴본 적 없는 노련한 관찰자다.
그는 바닷속 소문이나 남 흉보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작은 생선들이 다툰다 해도
“그래 너희끼리 해라” 하고 모래 속으로 숨는다.
그의 적수는 따로 있다.
오직 고래 싸움에만, 그의 등은 터진다.
이 얼마나 억울한 운명인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아무런 발언권도 없이,
거대한 고래들의 싸움에 등짝이 터지는 이 생애란.
거대 기업의 흥망에, 작은 자영업자가 무너지고
정치권 싸움에 민생이 타들어가듯
새우는 그저 사이에 낀 존재일 뿐인데, 가장 크게 다친다.
새우는 절대 억울하다고 소리치지 않는다.
어차피 목소리도 작고, 메아리도 없다.
대신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산다.
굴곡진 등을 이용해 좁은 바위틈을 통과하고,
몸을 낮춘 덕분에 어디든 숨어든다.
그 유연함과 적응력은 가히 '새우 철학'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이다.
웃기지만 슬프고,
작지만 단단하며,
굽었지만 꺾이지 않는 생의 기술.
그러니 이쯤 되면 말해볼 수 있다.
꼿꼿한 것만이 존엄은 아니다.
굽은 삶에도 굳센 품격이 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허리를 펴라, 가슴을 펴라 말하지만
어쩌면 새우처럼 살 줄 아는 것도
이 험한 세상을 견디는 하나의 멋진 전략인지도 모른다.
진짜 위험은 조개도, 멸치도, 해마도 아닌
등이 터질 만큼 거대한 싸움에 휘말리는 것이다.
그래서 새우는 싸우지 않는다.
다만 등 터지는 일만 없길 바랄 뿐이다.
그의 품격은 굽은 등 뒤에 숨어 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