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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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윤동주를 '국민시인'이라 부르는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떤 시인은 단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껴안은 존재다. 윤동주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살아 있을 때 단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했다. 스물아홉에 세상을 떠난, 짧고도 슬픈 생. 그러나 그가 남긴 말들은 해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에 깊이 각인되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단순한 시집 제목이 아니라, 한 민족의 고요한 외침이자 영혼의 자서전이 되었다.
우리가 윤동주를 국민시인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시가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시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떤 ‘양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저항했다.
총칼을 들지 않았고, 큰 소리로 외치지도 않았다. 그가 택한 방법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순수한 언어로 시대의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쓴 그 시구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가' 하고.
그는 순결하고도 단단한 사람이었다. 민족의 이름을 버리라 강요받던 시절, 일본식 이름을 쓰면서도 내면까지 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깊이 자신을 갈고닦으며, “나를 닮은 바람이 불어”오도록, 자신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며 살아냈다.
그의 시는 감상용이 아니라 성찰이다.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슬픔을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 말보다는 마음으로 시대를 끌어안는다는 것. 그건 그저 문학이 아니라, 윤리이자 정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시를 읽으면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양심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인은 아프면서도 조용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 자신의 고통을 떠들지 않고, 차라리 별과 바람을 친구 삼는 사람에게 깊은 연민과 존경을 보낸다. 윤동주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그의 시는 민족의 아픔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대를 초월해 우리에게 남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민주화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 우리는 여전히 윤동주를 찾는다.
그를 읽는 일은 단지 과거를 되새기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격동의 시대에 자기 존재를 부끄럽지 않게 지키려 했던 한 젊은 시인의 목소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여, 우리는 윤동주를 국민시인이라 부른다. 그는 국민 앞에서 시를 읊은 시인이 아니라, 국민 마음 안에 자리 잡은 시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매 순간, 우리가 바르게 살고 있는지 묻고 또 묻는 그 시의 울림은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