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5분’

김왕식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5분’
— 삶의 빛나는 역설을 위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 5분 전.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짧은 시간을 영원처럼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돌 하나, 빛 하나, 구름 하나까지 세밀하게 바라보았다. 죽음을 앞둔 그 찰나에, 그는 비로소 “살고 싶다”라고 느꼈고, “모든 것이 아름답다”라고 느꼈다. 그리고 기적처럼 형이 집행되기 직전, 황제의 사면이 도착했고, 그는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 짧고도 극적인 경험은 그가 살아남아 전 세계 독자에게 던지는 거대한 물음으로 남는다. 왜 우리는 살아 있는 순간의 경이로움을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가? 왜 모든 것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야만 존재의 소중함을 절감하는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지막 5분’에 존재의 진실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그 5분 동안 삶의 찬란함과 덧없음을 동시에 깨닫는다.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삶이란 무엇인가를 투명하게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쩌면 매일을 무감각하게 소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계를 보며 일터로 향하고, 스마트폰 속 뉴스와 메시지에 몰두하며, 오늘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하루를 닫는다. 그러나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이 마지막 5분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단지 극적인 체험을 전한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순간을 인식하는 감각 자체를 우리가 일상으로 끌어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삶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우리가 마음만 열면 마지막 5분처럼 절실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진지하게 산다는 것, 숭고하게 산다는 것은 곧 삶의 유한성을 알고 하루를 마지막처럼 살아내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오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지금 눈앞에 핀 꽃 한 송이를 눈에 담고, 햇살의 따뜻함에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은 거창한 윤리도, 도덕도 아니다. 다만 존재를 전심으로 껴안는 자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아남은 후, 단지 소설가가 아니라 인간의 심연을 꿰뚫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스스로 갱생할 수 있다. 지옥에서도, 어둠 속에서도.”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이 순간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삶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계기보다, ‘지금 이대로의 삶’을 얼마나 깊이 마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남용하지 않고, 찬란한 마지막 5분처럼 살아야 한다.

모든 순간은 유예된 선고 이후의 시간이다.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고, 하루를 맞이하는 건 선물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5분은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 이 찰나에도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잊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니 매일 아침, 우리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리고 그 물음이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조금 더 숭고하게 이끌 것이다. 죽음을 마주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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