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윽이 빛나는 별, 허만길 스승님 ㅡ김왕식

김왕식



경복고교 은사 허만길 선생님






저윽이 빛나는 별, 허만길 스승님




제자 김왕식


사람은 평생을 살며 많은 이들을 만난다.

온몸과 영혼으로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일 수 있다. 내게 허만길 선생님은 그런 존재였다. 삶의 가장 맑은 언저리에서, 나는 그분을 뵈었다. 70년대 중반, 경복고등학교. 누군가의 청춘이 막 피어나는 시절, 단정한 한 남자가 교정에 들어섰다. 단벌의 신사복, 그마저 소매를 꿰맨 옷자락. 그러나 그 품위는 낡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품위’가 그 옷을 걸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그분을 ‘백결 선생’이라 불렀다. 검소함이 곧 존재의 미덕이던 시절, 그 선생님은 청렴의 화신이자, 배움의 성좌였다.

그 맑은 눈빛, 말없이 전해지던 지성의 울림은, 한 줄 문장을 수천 겹의 마음으로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 눈빛 아래에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새기며, 문장이 아니라 삶을 배웠다. ‘국어’란 국어책에 있는 말의 기능이 아니라, 사람을 품는 언어임을, 나는 스승의 한 마디에서 배웠다.

그 후로 수십 년. 나는 스승의 발자취를 따르듯, 그분처럼 교단에 섰다. 나 또한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사람을 가르치는 제자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내 머리에 서리꽃이 내렸지만, 허만길 선생님은 여전히 내 마음의 하늘에 빛나는 별로 계신다. 단 한 번도 그 별이 흐릿해진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둠이 짙어질수록 더 또렷하게 빛났고,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은하수처럼 길을 비추어주었다.

지금 나는 시인으로, 수필가로, 평론가로 문단에 서 있다. 그 모든 이름 앞에, 조용히 ‘허만길의 제자’라는 이름을 더하고 싶다. 글이 언어의 껍질이 아니라 삶의 골수를 담아야 한다는 신념, 그것은 스승이 남긴 가르침이었다. 선생님의 한 문장, 한 강의는 내게 언어 이상의 존재론적 깨달음이었다.

지금, 여든을 훌쩍 넘긴 그 노구의 몸으로도 여전히 '경복고 국어교사 허만길'이라는 이름을 간직하고 계신다니, 나는 울컥한다. 교단에서 수많은 시간과 정신을 태워버렸을 그분의 뒷모습은, 이 시대의 마지막 교육자라 부를 만하다.

허만길 선생님은 내 마음속에서 언제나 저윽이 울리는 산처럼 계신다. 말없이 높고, 말없이 깊은 그 산은 내가 어디로 가도 나를 바라보는 방향타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스승이 되기 위해, 그 산의 그림자를 좇는다. 그리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기, 흐리지 않은 별 하나.

그 별이 바로, 선생님이다.





스승의 이름으로
― 허만길 선생님께


제자 김왕식



봄빛도 조용히 머물던 날
낡은 신사복 위 소매를 꿰매신 그 모습
말씀이 아니라 침묵으로 가르치시던
맑은 눈동자의 깊은 뜻을
나는 교정의 바람결 속에서 배웠습니다

칠판 위의 분필 가루보다
가슴속에 쌓인 말씀의 무게가 컸습니다
단어 하나에도 철학이 묻어났고
마침표 하나에도 생이 깃들어
그 문장들은 지금도 제 가슴을 누릅니다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고
청빈은 삶의 자세라고
스승께서 보여주신 뒷모습은
하나의 문장이 되어
제자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세월은 스승의 머리에 눈을 내렸지만
그 뜻은 봄처럼 새롭고 따뜻하여
이제 제가 누군가를 가르칠 때마다
스승의 눈빛을 닮고자
하루하루를 다잡게 됩니다

스승이여, 당신은 별이십니다
말없이 길을 비추는 저윽한 별
제 마음의 밤하늘을 밝혀
지금도, 앞으로도
존경으로 숨 쉬게 하는 이름입니다 ■



2025, 5, 15


존경을 담아,
제자 김왕식 드립니다.





□ 경복고등학교 전경



□제자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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