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生家

김왕식




안봉근 시인의 망중한








생가生家



시인 안봉근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들이 분가
(分家)할 때 품에 안고 싶어 그림자 집터에
집을 지었다

속 옷은 흰 구름으로 갈아입었지만
겉옷은 달빛 그대로
다섯 남매 태어나 떠나가고
어머니가 해님처럼 밝혀온 집

어깨동무 축백나무
옹이 진 소나무
장독대 돌절구만 한가롭다

잔디 깎고 풀 뽑으니
아스라한 그리움
산안개로 피어오른다









생의 터전에 흐르는 햇빛의 미학
― 안봉근 시인의 「생가生家」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봉근 시인의 시 「생가生家」는 단순한 회상의 기록이 아니라, 한 인간 존재의 뿌리를 탐색하는 미학적 성찰의 보고다.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되 그 흐름을 쥐어짜거나 애절하게 회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담한 언어로 ‘집’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다. 그것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삶의 기운이 솟아오르는 정신적 원향原鄕이다.

“아버지의 아버지는 아들이 분가分家할 때 / 품에 안고 싶어 그림자 집터에 / 집을 지었다”는 첫 연은, 단순한 서사적 진술 너머로 집의 기원을 정서화한다. 여기서 집은 노동과 의무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형상이며 기억의 *토포스 topos다. 시인은 ‘그림자 집터’라는 함축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유산’과 ‘보호 본능’을 동시에 함축시킨다.

속옷은 흰 구름, 겉옷은 달빛. 자연을 빌려 인간의 삶을 비유하는 시인의 상상은, 세속의 오염을 벗은 순결한 삶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다. 겉옷조차 꾸미지 않고 ‘달빛 그대로’ 두었다는 표현에서는 소박함을 넘어 자연과 동화된 존재의 미학이 드러난다. 이 집에서 태어난 다섯 남매는 마침내 각자의 삶을 위해 떠나지만, “어머니가 해님처럼 밝혀온 집”이라는 구절은 어머니를 집의 중심, 즉 생명의 불빛으로 명징하게 그려낸다. 시인은 집을 중심으로 모계적 상상력을 펼치며, 그 따스함을 해님의 속성으로 승화시킨다.

3연에 등장하는 “어깨동무 축백나무 / 옹이 진 소나무 / 장독대 돌절구”는 생가의 외연 外延을 구성하는 사물들이지만, 그 자체로도 시인의 삶의 철학을 담은 존재다. 축백나무는 변하지 않는 충절과 우정을, 옹이 진 소나무는 세월의 상흔과 존엄을, 돌절구는 삶의 반복적 노동과 여백의 미를 상징한다. 이 사물들은 시인의 눈에 단순한 물건이 아닌, 존재의 증거이며 가족의 역사를 짊어진 침묵의 증언자들이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시인은 직접적으로 현재의 동작―잔디를 깎고 풀을 뽑는 행위―를 통해 기억의 감각을 되살린다. 육체의 노동은 곧 마음의 기억을 건드리는 촉매이며, “아스라한 그리움 / 산안개로 피어오른다”는 시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정서의 형상화이다. 안개는 붙잡을 수 없는 슬픔이자, 동시에 떠날 수 없는 사랑이다.

안봉근 시인의 이 시에는 과장도 과시도 없다. 다만 수묵화처럼 번져오는 생의 원형이 있을 뿐이다. 그의 시적 미의식은 자연과 시간, 그리고 가족이라는 서정적 삼각구도 안에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조명하며, 존재의 본질을 “돌절구”처럼 묵직하게 짚어낸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적 서정시의 단단한 품격이며, 인간의 근원에 대한 문학적 예의라 하겠다.



*토포스 topos ㅡ문학의 전통적인 주제·사상




ㅡ 청람 김왕식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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