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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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부르는 두 가지 이름
― ‘하느님’과 ‘하나님’ 사이에서
청람 김왕식
나는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성당에 갔었다. 그곳엔 종소리보다 더 조용한 기도가 있었고, 향냄새보다 더 깊은 경건함이 있었다. 어린 나는 무릎 꿇은 어른들 틈에서 작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하느님, 오늘은 착하게 살게 해 주세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 교회에 나가게 되었을 땐, 모두가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부터 혼란스러웠다. 두 분이 다른 분일까? ‘하느님’은 좀 더 부드럽고, ‘하나님’은 단단하게 들렸다. 마치 시냇물과 강물의 차이 같기도 했다. 그러나 둘 다 하늘을 향한 부름이었다.
이름이 달라도 가리키는 존재는 같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역사 속에서 ‘하느님’이란 말은 먼저 등장했다. 우리말 ‘하늘’에서 비롯된 고유어로, 하늘처럼 크고 높고, 모든 것을 감싸는 존재를 뜻했다. 특히 조선 후기에 가톨릭이 전래되면서, 선교사들은 라틴어 Deus를 ‘천주’라 한자어로 번역하고, 우리말로는 ‘하느님’이라 옮겼다. 하늘의 님, 곧 초월적이면서도 친근한 신이었다.
19세기 개신교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조금 다른 해석이 더해졌다. 이들은 “유일하신 신”이라는 의미를 더욱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숫자 ‘하나’에 존칭 ‘님’을 붙여 ‘하나님’이라 불렀다. 오직 한 분이라는 뜻이다. 개신교는 삼위일체를 강조하면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으로 호칭을 구분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할 수 있다. 누가 맞는 걸까? 하지만 신앙의 언어에서 옳고 그름은 그렇게 나뉘지 않는다. ‘하느님’은 한국인의 전통 감성을 담아, 마치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서 부르는 어머니 같은 이름이고, ‘하나님’은 신학의 논리를 따라 유일신 사상을 뚜렷이 보여주는 이름이다. 둘 다 고유한 의미와 맥락을 지니고 있고, 다름은 곧 풍요로움이다.
어떤 이들은 지금도 "하느님은 틀렸어", "하나님만이 진짜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하늘이 단 하나이듯, 그 하늘을 부르는 목소리도 다양할 수 있다고. 마치 누군가는 ‘엄마’라 부르고, 다른 이는 ‘어머니’라 부르듯이. 그 사랑은 다르지 않다.
지금도 나는 기도할 때 가끔 헷갈린다. 오늘은 ‘하느님’이 더 잘 어울리는 날 같고, 또 어떤 날은 ‘하나님’이 마음에 더 가까운 날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나는 하늘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부름 안에 담긴 나의 진심, 그리고 그 부름을 들으시는 그분의 마음이다.
신앙은 단어로 쌓는 성이 아니라, 삶으로 쌓는 다리다. 그 다리 위에서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우리가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그분의 넓은 품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늘을 부르는 두 가지 이름, 그 안에 담긴 사랑은 하나다.
ㅡ 청람 김왕식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