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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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고요의 위안이 내려앉는 시간
청람
일주일의 끝자락, 혹은 시작. 토요일 아침은 늘 애매한 자리에서 우리를 맞는다.
그 애매함이야말로 이 시간의 매력이다. 강요받지 않는 해방, 목적 없는 평화, 그리고 아무 말도 걸지 않는 고요. 토요일 아침은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느린 숨을 선물해 준다.
평일의 아침은 항상 빠르게 움직였다. 알람이 울리고, 문득 잠에서 눈을 뜨면 우리는 이미 뒤처진 듯 허겁지겁 하루를 준비했다. 시간은 칼처럼 날카로웠고, 우리는 그날의 계획 속에 나를 접어 넣으며 산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은 다르다. 눈을 뜨는 데조차 시간이 허락된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조차 평일보다 더 부드럽고, 주전자에서 끓는 물소리마저도 온기를 담아 조용히 다가온다.
토요일 아침은 말하자면 온몸이 기억하는 위로다. 바쁜 하루를 살아낸 몸에게 ‘이제 조금 쉬어도 된다’고, 그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고 속삭이는 시간. 토요일의 고요는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 인생의 균형이 회복되는 깊은 숨결이다.
발코니의 식물도 오늘은 햇살을 천천히 따라 움직인다. 평소엔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초록의 윤기가 눈에 들어오고, 평범한 커피 한 잔에서도 어쩐지 안도의 향이 피어난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그 자체로 충분한 하루. 인간은 언제부터 이렇게 바쁨에 길들여졌던가. 그러나 토요일 아침은 일상에게서 찰나의 영혼을 되찾게 한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창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몸짓을 건넨다. 그 어떤 성취나 결과도 필요치 않다. 그냥 있음으로써 충분한 시간. 그런 아침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이 가장 잊기 쉬운 축복이다.
이 아침에 나는 종종, 이름 없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 소리는 번역되지 않아 더 깊게 파고든다. 마음의 언어는 종종 소리 없는 곳에서 울리기에, 토요일 아침은 삶의 소음에서 물러나 내면의 음성을 듣는 귀한 순간이 된다. 바쁘게만 살아온 한 주일 동안 미처 묻지 못했던 질문들—‘나는 괜찮은가’, ‘내 마음은 안녕한가’—이 고요 속에서 하나둘 떠오른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지만, 나만은 잠시 걸음을 멈춘다. 누구도 나를 급하게 부르지 않고,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토요일 아침은 마치 오래된 친구와의 침묵 같은 것이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관계처럼.
이 아침에 느긋이 책을 펼칠 수도 있고, 라디오를 틀어 오래된 클래식 한 곡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마음이 허전하지 않은 이유는, 이 시간의 진정한 선물이 존재 자체의 충만함이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은 말없이 말한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지금 멈춰 서 있어도 된다”라고.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우리는 또 한 번 한 주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이토록 깊은 위안을 전하는 아침, 우리는 그 이름을 너무 가볍게 불러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 고요가 없는 삶은 얼마나 삭막할지 생각해 보면, 우리는 깨닫는다. 토요일 아침이야말로 바쁜 삶을 견디게 해주는 은밀한 은총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 아침, 나는 단 하나의 계획만을 품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조용히 이 위안의 시간을, 삶의 한 장면으로 고이 접어두는 일이다. 언젠가 다시 바쁜 어느 평일에 꺼내어 펼쳐볼, 마음의 쉼표로.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