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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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 전 광복회장과 윤봉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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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리 국토를 딛다… 피묻은 태극기로 되살아난 민족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 시대를 울리는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 미국에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한 중년의 민족 애국 운동가, 윤봉한(77) 선생이 태평양을 건너 조국의 땅을 다시 딛었다. 1978년, 스물한 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그의 가슴속엔 단 한순간도 ‘대한민국’이 떠난 적이 없었다. 47년간 그는 낯선 이국땅에서도 조국의 이름을 지우지 않았고, 언어도 습관도 바뀌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조선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았다.
그의 귀국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다. 윤 선생은 대한민국의 북녘 접경지에서부터 서울까지, 무려 1700리의 국토를 맨몸으로 걸었다. 이는 단순한 행로가 아닌, 조국을 향한 순례이자, 민족정신을 되살리기 위한 신념의 장정이었다. 빛바랜 누루마기를 걸친 그의 어깨 위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깃발이 꽂힌 괴나리봇짐이 얹혀 있었다. 그 모습은 단지 상징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였다. 시대를 관통해 온 애국자의 모습, 그것은 멀리서도 단숨에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셨다.
이날 윤봉한 선생이 마주한 이는,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자 전 광복회장인 장호권 회장이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뜨겁게 부둥켜안았다. 그 포옹은 곧 시대와 시대, 피와 뜻, 그리고 조국과 민족을 이어주는 깊은 강물 같았다.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두 사람의 가슴 속에서 하나의 언어가 울리고 있었다.
장호권 회장은 조심스레 하나의 보자기를 풀었다. 그 안에는 독립운동가의 피가 배어 있는 태극기가 곱게 감싸여 있었다. 태극기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빛이 바래고 일부는 찢겨 있었지만, 그 상처야말로 이 민족이 지나온 시간을 증언하고 있었다. 장 회장은 윤 선생께 말했다. “이 깃발은 단지 천 조각이 아닙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이들의 혼이 깃든, 우리의 역사이며 미래입니다.”
윤 선생은 그 태극기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한동안 그는 아무 말 없이 깃발을 안은 채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아래로 흐르는 눈물은 단지 개인의 감상이 아닌, 민족 전체의 눈물이었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광장은 이윽고 정적에 싸였다. 마치 시간마저 그들을 위해 멈춘 듯했다. 바람은 조용히 깃발을 스쳤고, 누군가의 가슴속에서는 오래된 노래 하나가 울려 퍼졌다. “대한독립 만세…”
왜 그는 다시 왔는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낯선 타국의 안온함을 뒤로하고 이 땅을 걷게 했는가. 대답은 분명했다. ‘조국’이었다. 점점 희미해져가는 광복의 기억, 무뎌져가는 애국의 언어, 사라져가는 독립운동가의 자취. 윤봉한 선생은 그것들을 되살리고자 했다. 그 누가 시킨 것도, 그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그는 걸었다. 무려 1700리의 국토를,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민족의 길을.
이날의 만남은 두 사람의 인연을 넘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혼을 다시 붙잡는 순간이었다. 장준하 선생이 걸었던 정의의 길, 윤봉한 선생이 지켜온 신념의 길. 두 사람은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서, 피와 정신으로 서로를 맞았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말은 이날 서울 하늘 아래서 조용히 메아리쳤다. 그리고 뜨겁게 대한민국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