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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인데 ㅡ 시인 박철언

김왕식









산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인데




시인 청민 박철언




내 가슴에 눈물 내린다
대지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까닭 없이
눈물 흐른다

실연도 분노도 없는데
미움도 배신도 없는데
비가 내리고
이유도 없이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가

산책길 따라 둘레길 따라
걷고 있는데
산다는 것은 아름다움이요
놀라운 신비인데










비의 언어, 존재의 신비
― 청민 박철언의 '산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인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는 늘 말보다 조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는 생을 함부로 선언하지 않고, 고요한 침묵의 틈으로 삶의 비의(秘意)를 길어 올린다. '산다는 것은 놀라운 신비인데'는 눈물의 정체를 따지기보다, 그 눈물이 흘러나오는 존재의 근원에 시선을 돌린다. 감정이 아닌 존재 자체에서 우러난 눈물. 이 시는 그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오히려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깊게 들려준다.

“내 가슴에 눈물 내린다 / 대지에 비 내리듯”이라는 첫 행에서 시인은 눈물을 감정의 부산물이 아닌 자연의 현상으로 환치한다. 비는 대지의 것, 눈물은 가슴의 것. 그러나 둘은 근원적으로 같은 물의 형상이며, 정화의 과정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감정이 자연의 운행과 다르지 않다는 무욕(無慾)의 시선이 자리한다.
청민의 시는 언제나 ‘있음’의 무게보다 ‘흐름’의 자연성을 중시한다. 그 흐름은 때론 말이 되지 않는 상태, 곧 ‘까닭 없이’에서 비롯된다.

“실연도 분노도 없는데 / 미움도 배신도 없는데”라고 시인은 되뇐다. 이것은 슬픔의 조건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조건이 사라지고도 남는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 체험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 그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심연의 감정이다. 청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를 꺼낸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은 종종 철학의 언어보다 시의 침묵에 더 가깝다. 이 시는 설명을 멈추고, 그저 존재의 울림을 듣는다.

마지막 연, “산책길 따라 둘레길 따라 / 걷고 있는데”라는 일상성 속에 “산다는 것은 아름다움이요 / 놀라운 신비인데”라는 통찰을 직조해 넣는다. 걷는다는 행위는 생의 리듬이고, 시인의 철학은 그 리듬에 몸을 싣는 데 있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 감응(感應)의 영역이다. 놀라운 신비를 이성으로 풀기보다, 그 신비와 나란히 걷는 자. 그것이 청민 박철언의 삶의 태도이자, 시의 미학이다.

그는 어떤 거창한 진실을 외치지 않는다. 대신 눈물 한 방울, 비 내리는 대지, 조용한 산책길, 그 모든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찬란한 진실을 가만히 건져 올린다. 결국 이 시는 말한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아름다움이며,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임을. 청민 박철언은 그 진실 앞에서 한 줌의 눈물이 되고, 한 줄기의 비가 된다.
이 시는 그래서 철학이 아니라, 존재의 기도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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