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의도, 기계의 심장이 뛰는 섬






여의도, 기계의 심장이 뛰는 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여의도는 섬이다.

강물에 둘러싸여 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다리가 놓였다. 콘크리트는 사람의 발을 건네주었지만, 정작 마음은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그리하여 여의도는, 가장 가까이 있으나 가장 고립된 섬이 되었다. 사람을 닮은 기계들이 아침마다 몰려들고, 저녁이면 텅 빈 뼈대만 남는다. 숨은 쉬되, 숨결은 없다.

이곳에서는 숫자가 말을 대신한다. 주식 시세가 인사말보다 먼저 오르고, 이자율이 감정보다 예민하다. 커피 잔을 손에 쥔 사람들의 눈빛은 늘 계산 중이고, 회의실의 언어는 따뜻함이 없다. 웃음조차 데이터처럼 정해진 규칙 아래 떠돌 뿐. 여의도는 이제 말하는 인간보다 작동하는 로봇들이 더 많은 곳이 되었다. 감정은 불필요한 노이즈로 간주되고, 인간다움은 업무의 효율을 방해하는 불확실성으로 치부된다.

국회의사당이 있다.

돔 아래, 무수한 발언들이 튕겨 나가지만, 그 말들이 향하는 곳은 대중이 아닌 권력의 방향이다. 여의도의 정치는 어쩌면 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 누가 고개를 끄덕이는지, 누가 손을 들고, 누가 몸을 돌리는지. 그것이 곧 나라의 명운을 가르는 것처럼 보이나, 정작 그 장면 속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모두 ‘입력값’이고 ‘출력값’일 뿐. 존경이란 말은 낡은 깃발처럼 휘날리다 이젠 무대 뒤로 밀려났다.

그래도 여의도에는 공원이 있다.

나무가 자라고, 잔디가 펼쳐지고, 벤치마다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나눈다. 언뜻 보면, 휴식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다시 기계다. 정해진 시간에 조용히 웃고,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난다. 햇빛은 비추되, 따뜻하지 않다. 바람은 불되, 살갗을 스치지 않는다. 이곳은 로봇들이 잠시 전원을 꺼두는 공원, 기계가 사람 흉내를 내며 걷는 인공의 녹지다.

여의도는 묻는다.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이 섬은 스스로를 섬으로 만든다. 다리를 세웠지만, 마음은 오지 못하게 한다. 바쁜 말들, 빠른 발걸음, 차가운 결정 속에 진심은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니 여의도는 섬이다. 거대한 서버실이자 정지된 광장, 냉각된 감정이 흐르는 사무적 풍경.

그러나 나는, 아직도 기다린다. 벤치에 앉아 바람을 느끼는 누군가를. 회의실 창가에서 해 질 녘 노을에 잠시 시선을 주는 사람을. 자동응답이 아닌 고요한 고백을 꺼내놓을 수 있는 사람을. 여의도 한가운데, 기계의 심장을 잠시 멈추고 사람의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존재를.

여의도여,
당신은 아직 섬이지만,
그 섬 끝 어딘가에
사람이 있다는 믿음 하나쯤은,
남겨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ㅡ 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원 교수와 농촌유토피아대학교 ㅡ 사상의 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