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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ㅡ주광일 시인

김왕식










바닷가에서


시인 주광일







아주 이른 새벽 나는 혼자서 바닷가에 나갔습니다. 사람은 물론 물새 한 마리 없었습니다. 바다안개 때문에 수평선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바다와 하늘 너머에 계시는 당신을 온몸으로 느꼈고, 나를 따뜻하게 부르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동녘으로부터 거룩한 빛으로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바닷가에서 혼자면서도 외롭지 않았습니다.
초라한 내 가슴을 당신의 빛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주광일 시인

경기고 졸업
서울 법대
서울법대 대학원
사법고시 5회 합격
서울 고검장
고충처리위원장
변호사



시인 1943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1965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제5회 사법시험 합격하였다. 1979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006년에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로스쿨을 수료하였다.

검사로 있으면서 면도날이라고 불릴 만큼 일처리가 매섭고 깔끔하며 잔일까지도 직접 챙겨 부하검사들이 부담스러워했다. 10.26 사건 직후 합동수사본부에 파견돼 김재규 수사를 맡았으나 "개혁의지가 없다"는 이유로 원대복귀되기도 했다. 인천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있을 때 자신이 직접 언론 브리핑을 했던 인천 북구청 세금 횡령 사건, 인천지방법원 집달관 비리 사건 등 대형 사건을 처리했다.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차장검사로 있던 1989년 9월 18일부터 나흘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지역법률가회의에 참석하여 '한국경제 발전 과정에 있어서의 외자도입법의 역할'이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있던 1992년 8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다닐 때 써두었던 사랑을 주제로 한 시 60편을 묶은 《저녁노을 속의 종소리》(도서출판 빛남)라는 시집을 출판했다.







“빛의 부름 앞에서, 바다는 다시 마음이 된다”
― 주광일 시인의 시세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의 작품 「바닷가에서」는 법과 공직이라는 엄정한 세계를 걸어온 한 인생의 내면이 시라는 형식으로 응축되어 펼쳐진 경건한 독백이다. 이 시는 단순한 새벽 바닷가의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거룩한 침묵의 무대’로서의 바다를 통해, 인간이 고요 속에서 만나는 본질적 존재, 곧 ‘당신’이라는 절대적 타자와의 조우를 은유한다.

시인이 묘사한 “아주 이른 새벽”과 “물새 한 마리 없”는 풍경은 곧 세속의 소리와 장식을 모두 지운 ‘정화된 공간’이며, 이 공간은 주광일 시인의 공직자로서의 삶이 지닌 청렴성과 맞닿아 있다. 법의 언어가 정의를 담되 온기를 잃지 않아야 하듯, 이 시 역시 차가운 안갯속에서도 ‘당신’의 따뜻한 부름을 듣는다. 시인이 말하는 ‘당신’은 특정 종교적 신성을 넘어서, 삶의 이정표이자 내면을 밝히는 윤리의 빛으로 읽힌다.

“수평선도 볼 수 없었”다는 구절은 삶의 방향성이 모호할 때에도, 신뢰와 믿음으로 중심을 붙잡고 살아온 한 사람의 진중한 자세를 담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따뜻하게 부르시는 소리”를 듣는다. 이는 외부의 시끄러운 갈채가 아닌, 양심과 진실, 존재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초월적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만이 들을 수 있는 ‘영혼의 언어’다.

“거룩한 빛으로 감싸주었습니다”라는 표현은 시적 이미지이자, 공직자로서 한평생 법의 빛을 등에 지고 살아온 자의 실존적 고백이다. 이 빛은 심판이 아니라 치유이며, 판단이 아니라 품어주는 사랑이다. 시인의 삶은 ‘검의 길’이 아니라 ‘등불의 길’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시는 바다라는 대자연 앞에서의 겸허한 자기 비움, 법과 도리를 넘어선 존재론적 평화를 노래하며, 단정하고 맑은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까지 씻어낸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정의와 인간다움이 충돌하는 시대에, ‘말없는 시정(詩政)’을 실현하는 한 지식인의 고요한 외침이다. 초라한 가슴을 비우고 빛으로 채우는 이 한 편의 시가, 그의 삶 전체를 대변한다.

그는 글을 통해, 법이 지키지 못한 자리를 사랑으로 품는다.



ㅡ 청람 김왕식

주광일 시인




주광일 시인, 김왕식 평론가, 박철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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