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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 뚫기 ㅡ 시인 백영호

김왕식





바늘귀 뚫기



시인 백영호




수명 다한 철길에서
레일 한 토막 싹둑 잘라
뭉떵한 쇠뭉치를
수천 번 수만에 만 번을
깎고 벼리고 갈아서

쓰러지지 않는 정신 하나에
땀방울을 쏟았다

정수리 끝 관통한 과녁 바늘귀,
하늘문 통과의 수련이었다.







수련의 시학, 통과의 문학
― 백영호 시인의 「바늘귀 뚫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의 「바늘귀 뚫기」는 단지 한 조각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생의 수련 기록이며, 작가가 살아온 고요한 분투의 표식이다. 그 시는 마치, 말보다 오래 견뎌낸 침묵이 문장으로 번역된 듯 정제되어 있다.

첫 연에서 “수명 다한 철길”은 낡은 것의 폐기가 아닌, 삶의 무대가 달라졌음을 암시한다. 레일 한 토막은 단지 금속이 아니라, 시인의 지나온 길, 묵묵히 감내한 연단의 시간이다. “뭉떵한 쇠뭉치”는 정형 이전의 혼돈이자 원형이며, 그 자체가 백영호라는 존재의 출발점을 상징한다.

그것을 “수천 번 수만에 만 번을 / 깎고 벼리고 갈아”낸다는 구절은, 곧 시인의 문학이 다듬어진 방식이다. 이는 말의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연마이며, 고통과 인내가 축적된 예술적 투쟁이다. 백영호 시인의 언어는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난 문장들이 아니다. 그것은 땀과 고통, 자기 부정과 인내 속에서 정련된 시의 결정체다.

이어지는 “쓰러지지 않는 정신 하나에 / 땀방울을 쏟았다”는 행은, 시인의 미의식과 정신적 태도를 정확히 보여준다. 이 시는 기술의 성취보다도 ‘쓰러지지 않는 정신’이라는 윤리적 중심을 강조한다.
백영호 시인 시에 있어 문학은 곧 생의 윤리이며, 정직한 몸가짐으로 삶을 관통하는 도구다.

그리고 시는 결구(結句)에서 압축된 사유의 보석을 제시한다.
“정수리 끝 관통한 과녁 / 바늘귀, / 하늘문 통과의 수련이었다.”
이 구절은 경건한 고통 속에 도달한 절정이다. ‘정수리 끝 과녁’이란 자아의 중심이며, ‘바늘귀’는 극도의 협소한 문, 곧 성찰과 절제의 지점이다. 시인은 그곳을 뚫는다. 육체적 수행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집중과 통과를 통해. 그리고 그 마지막 절정에서 “하늘문”은 문학의 궁극, 곧 존재의 근원을 마주하는 통로로 제시된다.

백영호 시인의 삶은 시를 위한 인생이 아니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갈고, 그 속에서 존재를 초월하고자 했다. 그에게 시는 아름다운 장식이 아니라, 내면을 벼리는 바람의 숫돌이며, 바늘귀처럼 좁은 진리의 입구이다.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뚫고자 했는가. 어디로 통과하고자 했는가. 그리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갈아내며 우리는 살아왔는가.

백영호 시인의 「바늘귀 뚫기」는 삶과 시, 기술과 정신, 언어와 초월이 만나는 접점에서 빛난다. 그것은 한 장의 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정수리 끝에 맺힌 고요한 광휘다. 그리고 그 빛은, 오직 삶의 진실을 견뎌본 자만이 뚫어낼 수 있는 ‘하늘문’이다.




ㅡ 청람 김왕식


백영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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