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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부 시인의 시 '누룩'을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왕식



이성부 시인











누룩



시인 이성부




우리는 한 덩이 누룩이 되고자 했다
제 몸을 부풀려 타인을 취하게 하는

스스로는 타인의 안에서
슬픔과 기쁨을 부풀려주는

우리는 제 몸을 버림으로써
타인의 뜨거운 가슴속에서
달디단 술이 되고자 했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그 안에서 익어 거품처럼
하늘로 올라가고자 했다

마침내는 향기로 남고자 했다







이성부 작가의 삶과 가치철학, 그리고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성부 시인은 시인으로서 민중의 아픔을 품고 치열하게 살아낸 이 시대의 누룩이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문학의 한복판에서, 그는 시를 사회적 양심의 언어로 세웠다. '자기희생을 통해 타인을 살리는 존재'라는 삶의 철학이 그의 시세계의 핵심이며,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발효되어 가는 시정신'은 그의 미의식 그 자체이다.

「누룩」은 이러한 시인의 인생관을 응축한 작품이다. 누룩은 스스로 썩고 녹아야만 타인을 향기롭고 기쁘게 한다. 이는 곧 '시인은 스스로를 소모해 타인의 의식을 일깨운다'는 자기 인식의 메타포이며, 이성부 시인의 존재론적 자세를 압축한 시적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짧지만 깊고 단단하다. “우리는 한 덩이 누룩이 되고자 했다”는 시구는 다중적이다. 역사 속 소시민, 민중, 예술가, 구도자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정언이며, 현대인이 잃어버린 ‘타인을 위한 소멸의 미학’을 다시 일깨운다. 이성부는 ‘이기’가 아니라 ‘타자’ 속에서 자기를 완성하는 존재로 인간을 본다.

현대인은 스스로 부풀어 다른 이를 취하게 하려는 ‘누룩의 윤리’를 잃었다. 이 시는 SNS와 소비주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자기 소멸의 숭고함’이라는 윤리적 귀감을 제공한다. 특히 '향기로 남고자 했다'는 결말은 인간 존재의 최종 목적이 향기로운 흔적으로 남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 시는 절제미와 상징성이 뛰어나지만, 다소 개념적으로 밀도 높은 문장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감정의 상승선이 약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정서적 몰입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사랑이든 미움이든' 이후의 구절은 너무 빨리 절정으로 이르러 독자의 체감 리듬을 단절시킬 우려가 있다.

하여
시의 중후반부에 감정적 전환의 간격을 두거나, 감각적 이미지를 한두 군데 더 삽입함으로써 독자의 호흡과 공명을 유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살짝 재구성할 수 있다:

사랑이든 미움이든
발끝까지 스며든 뜨거운 결로
익어, 익어, 마침내는
거품으로 치솟고자 했다

이러한 보완은 시가 감성적으로 더 넓은 독자층과 호흡할 수 있게 만든다.

요컨대,「누룩」은 이성부 시인이 ‘시는 타인의 술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언어로 발효시킨 작품이다. 자기희생을 통해 타자를 향기롭게 만드는 존재로서의 시인, 혹은 인간의 모습은 시대를 넘어 울림을 준다. 현대인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자기완성의 길은 타인의 심장을 데우는 데 있다’는 오래된 진실을 다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이성부의 누룩은 다소 정념의 결이 절제되어 있어, 오늘날 감각적인 언어와 정서적 드라마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여운보다 담론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문학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끌어올리는 도구임을 증명한 아름다운 발효의 기록이다.
결국 시인도, 인간도 마침내는 향기로 남고자 하는 누룩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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