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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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것들에 대하여
― 조용한 부름에 귀 기울이는 삶의 자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들은 대체로 큰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치는 목소리, 현란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장면들, 경쟁과 성취의 언어들 속에서 존재를 증명받으려 애쓴다. 그러나 내게 진짜 ‘나’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아주 작고 조용한 것들이었다. 고요 속에서 들리는 미세한 떨림, 찰나의 빛, 말없는 눈동자 하나가 나를 향해 손짓하듯, 그렇게 나를 이끄는 것들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이의 눈동자다. 언어도 논리도 필요 없는 맑은 시선. 그것은 세상을 처음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오염되지 않은 세계에 대한 경이와 수줍음이다.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어떤 틀도 해석도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그 눈동자 앞에서 말이 막히고, 도리어 나 자신이 투명하게 비치는 느낌에 전율한다. 그 맑은 시선은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또 나를 부르는 건 한밤중의 바람소리다. 불면의 밤,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은 마치 오래된 친구의 속삭임처럼 다정하고 은밀하다. 그 바람은 어디서 왔는지, 누구를 거쳐 왔는지 알 수 없지만, 나뭇잎을 흔들고, 창틀을 두드리며 “잠시만, 내 얘기를 들어줄래?”라고 조용히 말을 건다. 나는 불 꺼진 방 안에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면 깊숙한 곳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감정 하나가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바람은 내 감정을 흔들고, 나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비에 젖은 잎을 통과해 뚝뚝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 그것 또한 나를 부른다. 그것은 나뭇잎과 하늘 사이의 짧은 인사 같은 것이다. 너무 짧고 여려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나쳐버리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감각이 맑아지는 때다. 쏟아지는 비가 아닌, 그 사이사이 흩어지는 물소리에서 나는 마음을 적신다.
무지개가 뜰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 빛을 따라간다. 누구를 위해 준비된 것도, 누구의 것이 될 수도 없는 빛. 그것은 소유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형상이다. 아마 나를 부르는 모든 것들은 그런 공통점을 가진다. 머무르지 않고 스치며 지나가는, 그러나 깊은 흔적을 남기는 것들. 저녁노을과 노을에 기대어 떠도는 구름 떼도 마찬가지다. 저물어가는 하루의 고백이자,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만 볼 수 있는 진심이 구름의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아침 이슬은 나를 가장 낮은 자리로 부른다. 잔디에 맺힌 작은 방울,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에 잠깐 피었다가 햇살에 사라지는 생명의 속삭임. 그 작음 앞에서 나는 나의 욕망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존재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비로소 느낀다. 들판에 핀 갈꽃은, 이름도 없이 피어나 혼자 바람을 맞으며 자란다. 누구의 허락도, 박수도 없이 피어났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그 들꽃들은 말한다. 굳이 세상에 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살아 있음 그 자체가 빛이라고.
그리고 새벽. 어둠과 빛이 엇갈리는 그 경계에서, 나는 가장 선명하게 나를 부른다. 그 시간은 세상도, 나도 조용해지는 시간. 모든 감정이 가라앉고, 존재의 중심이 맨살처럼 드러나는 순간. 물처럼 흐르는 어둠과 빛 사이에서, 나는 나의 지난날을 정리하고, 다가올 하루를 향해 아주 조용히 결심한다.
이 세상에서 나를 부르는 것들은 모두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깊고 울림 있다. 그것들은 성취나 결과가 아닌, 존재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켜 준다. 나는 그 부름에 귀 기울이며 산다. 그것이야말로 나의 영혼이, 가장 나다워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