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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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언덕에 올라, 뜸 들이기의 서정
청람 김왕식
어느덧 6월 중순, 햇살은 마치 여름 초입의 설렘처럼 고요히 내려앉지만, 내 시간은 마치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를 정도로 훌쩍 흘렀습니다. 서두를 일도 없건만, 우리의 계절은 어느새 달려와 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뜨미 들인다’는 아름다운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찰지고 갓 지어진 밥이 아닌, 가마솥 위에서 은은히 익어갈 때처럼, 시간이 주는 깊이와 온기를 스스로 완성하는 시간입니다. 그렇게 시간은 맛이 되고, 향이 됩니다. 한국의 고전들—춘향전, 심청전—은 바로 그 뜸의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기다림은 지루함이 아닌, 은밀한 설렘의 숲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카페 한켠에 앉아, 커피 잔 위에 고이는 여운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압니다. 그것은 “지금”이라는 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극장 문 앞 장사진 속에서 가슴이 조여 올 때, 당신은 압니다. 그 기다림 속에 담긴 ‘다음’에 대한 희망의 은빛 불씨를 말입니다.
‘뜨미 들임’은 단순한 기다림을 넘어, 마음의 흙을 가꾸는 일입니다. 시절이 급해지면서, 우리는 빠른 결론만을 좇곤 하지만, 종종 우직하게 걸어온 길이 더욱 진하고 단단하게 우리의 삶을 빚어냅니다. 지름길처럼 보이는 샛길이 돌아가는 듯 보여도, 언젠가는 고갯길을 넘어 더 넓은 풍경으로 우리를 인도하듯 말입니다.
종교의 수행도 이 뜸의 은유로 가득합니다. 명상은 생각의 모래를 정제하는 시간이고, 묵상은 마음의 불빛을 둥글게 만드는 시간이며, 좌선은 하나의 숨결이 우주와 닿는 정적인 움직임입니다. 마틴 루터의 무릎으로 오른 계단, 예수의 광야 40일 금식은 모두 뜸을 들이며 영혼을 다져 나가는 고요한 예식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이 말하듯, ‘급하면 돌아가라.’ 돌아가는 길, 그것은 마치 들판 한복판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계절의 온도를 느끼는 시간입니다. 직행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돌아가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과 바람,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실을 다시 만납니다.
그러니, 지금 이 6월의 중턱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나요? 시간의 언덕에 올라, 우리는 무엇에 뜸을 들이고 있나요? 하루하루의 밥솥 속에서 은근히 익어가는 감정과 기억들을 느껴본 적 있나요?
느릿한 시골길 위에 지는 석양처럼, 여유를 품어 보길 바랍니다. 그 뜸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인내는, 언젠가 밥알처럼 입안에서 포근히 퍼지며 우리의 어제를 맛있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의 뜸이 내일의 품격이 되기를, 멈춤 속에서도 향기를 머금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뜸들이 다 익어갈 때, 당신의 속도는 언젠가 혼자 빛나는 계절이 될 것입니다. 기다림이 아니라, 성숙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임을 알게 되는 시간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