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뿌리, 행운의 새싹 ㅡ청람 김왕식

김왕식








불행의 뿌리, 행운의 새싹



청람 김왕식




돌이켜보면, 불행은 어쩌면 가장 깊고 단단한 토양이었나 보다.
그 안에서 출렁이는 아픔의 파도는 나를 깎고, 깎아 더욱 견고한 존재로 만들었다.
어떤 이는 그 불행과 행복을 쌍둥이라 말한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 서로의 그림자라 말이다.

세상은 우리의 슬픔에 손수건을 내밀지 않는다.
비에 젖은 노을에게도 우산은 주어지지 않는 법.
자기 연민에 젖어 홀로 울음을 삼키기엔,
밤하늘의 별들은 너무나 차갑고도 무심하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모든 운명을
무릎 꿇지 않고 한 손으로는 끌어안길 바란다.
“체념”이라는 가느다란 새장은
너를 가두기엔 너무 좁다.
우아하게, 격식을 차려서
불행이라는 잔치에 품격 있게 초대받길 바란다.

잎이 다 떨어져 나간 채 겨울나무처럼 비어도 좋다.
가장 중요한 건, 뿌리만큼은 땅속에 꽂혀 있어야 한다.
깊게 박힌 뿌리 하나가 바람을 견디고
눈보라를 견디고
결국 봄의 불러옴을 붙잡는다.

그렇게 버텨내던 날들 사이로
괴롭히던 무게는 점차 연기처럼 흩어진다.
어느 순간, 태풍은 지나가고
하늘은 구름을 걷어낸 듯 깨끗해지고
너는 마침내
눈부신 햇살 아래 서서
땅의 호흡을,
몸의 온기를,
삶의 맥박을 느낀다.

불행의 그릇이 가득 차서야
행운의 맑은 물도 자리를 잡는다.
비옥해진 심장에
새로운 이야기가 자라고,
깨끗한 숨결이 깃든다.
이제 너는,
허리를 곧추 세우고
두 팔을 활짝 펼쳐도 좋다.
그 기지개 속엔
눈물의 단백질이,
버텨낸 땀방울이,
더 이상 떨지 않는 손이 담겨 있다.

불행은 너를 흔들었지만
그때마다 너는
흙을 삼키고서 자라났다.
마침내, 행운은
쪽빛 하늘처럼
네 앞에 펼쳐진다.

이제 돌아서 바다를 바라보라.
거기엔 비로소
너의 고요한 성취가
잔잔한 물결처럼 반짝인다.
그 물결은 말없이 속삭인다.
“당신은 여기까지 왔다.”

불행의 뿌리는,
행운의 토양이다.
그리고 지금,
그 속에서 다시 일어선 너는
더욱 선명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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