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아름다운 청람의 찻자리
김윤미 선생의 단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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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숨결을 돌아보는 시간, 청람 가족에게
청람 김왕식
근자에 들어 우리 청람 문학회 식구들 사이에 부상의 소식이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작은 균열처럼 시작된 그 아픔은, 어느새 마음속 한구석을 울리는 저음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상의 흐름이 우리가 특별히 더 조심하지 못해서 생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인생과 문학의 노정 속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예상치 못한 돌부리’ 같은 것일 테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서로를 세심히, 더욱 따뜻한 시선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조심한다고 다 막아낼 수는 없겠지만, 서로를 섬세하게 살피면 그 온도가 곧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낯선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청람 문학회라는 이름 아래 모여, 시와 글, 마음의 울림을 나누며 비로소 ‘패밀리십’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의 삶에 한 줄의 시를 더해주었고, 각자의 문장 속에 동행의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문학회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위에서,
나는 느낍니다.
‘이 분들과 함께 걸어가는 이 길이, 문학의 길이기도 하지만 곧 인생의 길이구나.’
이 깨달음은 공동체가 주는 특별한 축복입니다.
이제 우리는 단지 시를 듣고 평가하는 문학 공동체가 아니라,
사람을 살피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한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아픈 식구가 생기면 함께 걱정하고,
품 안에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한 위로가 넘치며,
작은 소식을 나눌 때에도 진심으로 귀 기울이며 마음을 보태는,
그런 모습들이 우리 공동체를 더욱 ‘사람 냄새나는’ 자리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언어가 단단해질 때,
동시에 마음은 더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
문학이 사람을 세우는 힘이 있음을,
바로 우리 자신이 살아내며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상을 겪은 이들도, 함께 지켜보며 기도하는 우리도,
모두가 더욱 단단하고 깊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더 큰 치유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상처를 마주하고, 돌보고, 함께 회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 모두의 삶은 더욱 따뜻한 시 한 줄이 되어 갑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문학회 이름 아래,
모든 청람 식구들이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모일 그날을 고대합니다.
“다시 함께 마주 앉아 시와 글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
우리의 연결은 더 깊어지고
문학의 울림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이 말은 단지 바람이 아니라, 진심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그러한 사람들의 집합이며,
부상으로 인해 느슨해진 삶도,
다시 세심한 시선과 마음으로 보듬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회복될 때까지
함께 지켜줄 것입니다.
시와 글, 그리고 서로의 숨결이 만나 만들어지는 이 공동체.
그 자리에서 우리는 문학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다시 묻게 됩니다.
“너의 아픔이 곧 우리의 이야기이고,
내 문장이 곧 너를 향한 기도입니다.”
부디 이 글이, 다시 회복의 기운이 되어
청람 가족들의 마음속 한 켠에도
미소와 위로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함께 걸어갈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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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숨결이 깃드는 시간
청람의 씨줄과 날줄,
흔들려도 서로 얽힌 자리,
부상의 족적 위로
우리 발걸음은 멈췄지만
눈빛은 그 위를
더 천천히,
더 따뜻이 읽는다.
“바람도 막지 못하지만
씨앗은 바람 속에서 자란다.”
그 말, 마음속에 씨앗처럼 잔잔히 감돈다.
문학회라는 촛불 아래
우리는 시의 연을 띄운다
삶이라는 연못에 물결을 일으키며.
작은 소식에도
어깨는 둥글게 내려앉아
기댈 보금자리가 되고,
한마디 말은
밤하늘을 밝히는 별이 된다.
상처는 고요한 호수 같지만,
우리의 문장 물길이
당신의 마음을 흘러넘쳐
새로운 시와 위로를 낳는다.
이 이름 모를 시절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숨결이 된 채
오늘을 부드럽게 안는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