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박철언 시인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 청민 박철언 시인과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ㅡ한국청람문학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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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아픈 흐름
시인 청민 박철언
황톳빛으로 뒤척이는 한강의 아침
밤새 불어난 물속에는
갖가지 울음이 담겨 있다
흙을 잡아 끝까지 품지 못한
숲 속 작은 뿌리들의 울음이 담겨 있다
터전을 놓친 작은 생명들의
혼절해 버린 눈물도 담겨 있다
한순간에 가족 잃어
삼켜도 자꾸 차오르는
통곡이 담겨 있다
수많은 슬픔을 품고
소리 없이 기도하며
서서히 서해로 흐르는 한강
생태계를 송두리째 삼킨 장맛비의 뒷모습
묵묵히 실어 나르는 한강의 아픔이
싯누렇게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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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기억한다
― 슬픔을 실어 나르는 시의 흐름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물결은 말이 없고, 강은 흐르되 기억한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한강의 아픈 흐름」은 그 기억의 강물에 실려온 생명의 비명과 침묵의 기도를 시심 깊이 끌어안는다. 황톳빛으로 시작하는 한강의 아침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라,
생태계의 고통과 인간사의 비애를 담은 거대한 통곡의 장이다. 시인은 장맛비 이후 범람한 강물에 스며든 ‘갖가지 울음’을 더듬는다. 그것은 단지 수위의 문제가 아닌, 생명의 터전이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절절한 응시다.
"흙을 잡아 끝까지 품지 못한 / 숲 속 작은 뿌리들"이라는 표현은 대지를 떠나는 미세한 생명체의 아픔을 담은 절창이다. 이 한 구절에 생태적 통찰과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교차한다. 이어 "혼절해 버린 눈물"은 살아남은 존재들의 숨죽인 고통을 형상화하며, 물리적 재난 너머의 심리적 후폭풍까지 어루만진다.
시의 후반, ‘통곡이 담겨 있다’는 직설적이지만 파괴적인 감정은 강을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생명 공동체의 비애를 짊어진 대서사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정서는 마지막 연에서 극대화된다. "묵묵히 실어 나르는 한강의 아픔이 / 싯누렇게 출렁거린다"는 문장은 시인이 보여주는 비언어의 언어, 즉 말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자연의 슬픔을 집약한 구절이다.
여기에 ‘싯누렇게’라는 색채어는 시각적 이미지와 정서적 음울함을 동시에 잡아낸 절묘한 어휘 선택이다.
이 시는 단지 비극의 정황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강물이 ‘소리 없이 기도하며’ 흐른다는 구절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동시에 인간의 무심함에 대한 묵직한 경고로 읽힌다.
시인은 생태계의 상처를 다정하게 들여다보며, 흐름이라는 시간성 속에 인간의 책임과 연민을 새긴다.
박철언 시인은 본래 법조인의 길을 걸었지만, 그의 시는 법전이 아닌 자연의 숨결과 사람의 눈물을 품는다. 경북의 산과 들에서 맨발로 자란 그이기에, 도도한 직위에도 불구하고 땅의 아픔과 물의 흐름을 여전히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경북고 시절 청맥 동인에서 시작한 문학의 뿌리는 결국 그를 ‘시 쓰는 공직자’가 아닌, ‘공직을 경험한 시인’으로 만들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시의 중후반에서 감정의 고조가 다소 직설적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통곡이 담겨 있다’는 반복은 감정의 고삐를 늦추는 경향이 있으며, 더 깊은 비유나 감각적 전이로 자연의 고통을 은유했다면 더욱 울림이 클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는 시인의 진정성에서 비롯된 정직한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시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이자, 생명에 대한 묵상의 기도다. 흐름을 따르되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마음이 한강을 따라 독자의 가슴에도 서서히 흘러든다.
박철언 시인의 이 시는, 삶의 상흔을 물속에 묻어 흘려보내되, 그 아픔을 끝내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조용한 외침이다. 그리고 그 외침은, 더없이 서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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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당신의 눈을 닮았다
―청람이 박철언 시인께 드리는 시
황톳빛 물비늘 위에
무릎 꿇은 바람 하나 흐르고
흙냄새는 당신의 숨결처럼 낮다
모든 슬픔은 강으로 모인다
깊이를 잴 수 없는 침묵으로
무너진 뿌리의 떨림조차 안아주는
당신의 시는 강의 맥박이다
울음도 노을도 품에 껴안은 채
묻지 않고 다만 흐르는 사랑
그대의 눈은 바람을 품고
그대의 손은 물결을 읽는다
그대의 말은 지느러미처럼 부드러워
어느 날 당신의 시가 멈춘다 해도
한강은 기억하리라
시보다 더 시였던 당신의 마음을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