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평화를 묻는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총성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평화를 묻는다
― 6·25를 돌아보며, 세계의 전쟁과 평화를 말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1950년 6월 25일, 새벽의 정적을 가르며 낯선 총성이 울렸다.
한반도는 그렇게 전쟁의 시간 속으로 떨어졌다. 국토는 두 동강이 나고, 한겨레는 북과 남으로 찢겼으며, 가족은 눈앞에서 헤어졌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도 전에 뿌리째 삶을 잃었다.
6·25는 단순한 분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념이 사람의 생명을 집어삼킨 비극이었고, 형제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눈 동족상잔의 상처였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났다. 이제 사람들은 전쟁을 ‘기념’이 아닌 ‘기억’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쟁은 과거형이 아니다. 2025년의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장은 눈 덮인 땅 위에서도 불타고,
이스라엘과 이란, 가자지구의 불길은 끝날 줄을 모른다.
어느 나라든 ‘정당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속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이름도, 이유도 없이 사라진다.
전쟁이 지닌 가장 큰 허상은, 그것이 정의를 실현한다고 믿는 데 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는 알고 있다.
전쟁은 국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한 번 일어난 전쟁은 강 하나, 철조망 하나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꺼지지 않는 슬픔이고, 세대를 건너 번지는 아픔이다.

이제 우리는 6·25를 단지 “북한의 남침”으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그날 이후 우리 민족이 짊어진 고통과 분단, 사상과 이념이 낳은 균열, 그리고 이후의 모든 남북의 긴장과 세계의 개입—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인간적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보다 깊이 반추해야 한다.
전쟁은 이긴 자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그 어떤 전쟁도 인간을 구원하지 못했다.

지금 세계가 겪는 참상은 6·25의 재현이 아니라, 그 연장선일지 모른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징집을 피해 도망치는 모습,
키이우의 지하철역에 갇혀 우는 아이들의 얼굴은
1950년 낙동강 방어선에서 부모를 잃고 울던 조선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가자지구에서 무너진 잿더미 속에서 태어나는 아기의 울음은,
38선을 넘지 못하고 얼어 죽은 피난민의 마지막 숨결과 다르지 않다.
전쟁은 늘 가장 연약한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그 침묵이 끝난 자리엔 폐허와 증오만 남는다.

우리는 이제 ‘안보’와 ‘자주’라는 말에 무감각해져선 안 된다.
그 말들이 또 다른 무기를 정당화하고, 또 다른 전쟁을 부추기게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국경선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이다.

6·25를 기억한다는 것은, 다시는 그런 날이 없도록 다짐하는 일이다.
남과 북 모두에게, 전쟁은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
이제는 정치가 아니라 인간의 눈으로 역사를 보아야 한다.
다른 민족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때 세계가 외면했던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던 민족이기에,
이제는 다른 전쟁 앞에 가장 먼저 "멈추라"라고 말할 자격이 있다.

전쟁은 반드시 끝나야 한다.
평화는 단지 침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미래를 모색하는 일이다.
그 출발점은 기억이다.
그 기억을 통해 아픔을 나누고, 책임을 찾고,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6월 25일.
한반도에서 들려온 총성이 이제 세계의 양심을 흔들기를 바란다.
이 땅에서 다시는 총소리가 들리지 않기를,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도 더 이상 어머니가 아들을 전장에 보내지 않기를,
우리는 다시 평화를 말해야 한다.
이제는 진정,
전쟁을 끝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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