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은 문학이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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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은 문학이 안 되는가?
― 진정한 문학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단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은 학교의 교과서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문학은 제도와 수업, 문학사의 연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기 존재를 온몸으로 밀어붙이며 세상에 응답하는 가장 깊은 내면의 소리다. 그러므로 ‘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은 문학이 안 되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의 본질에 대한 본격적 사유로 이어진다.
문학은 학습의 산물이기 이전에 내면의 진실이다. 그것은 배운 문장보다 더 깊은 감각에서 나오는 언어다. 교과서의 정형성과 비평의 잣대를 넘어, 때로는 문법조차 무시하고, 형식도 갖추지 못했지만, 그 사람의 삶 전체가 농축된 한 문장이 문학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전통이나 규범이 만들지 못하는, 오직 살아낸 자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문장의 무게다.
백석은 외국어학교를 졸업한 지식인이었지만, 그의 시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학문보다 토속의 혼, 언어의 근원성에 있다. 반면 어떤 평론가는 문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죽은 말들을 조합하며 살아 있는 독자를 잃는다. 이는 곧, 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진정성의 언어임을 역설한다.
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는 자기만의 언어로 삶을 정직하게 직조할 수 있다. 문학은 지식의 화려함이 아니라, 고통의 투명함에서 나온다. 어린 시절의 가난, 일용직의 고단함, 가족을 향한 무언의 사랑, 시대의 억눌린 절규—이 모든 것은 문학 이론서 한 권 없이도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됨을 증명한다.
루소의 『고백록』은 고전이 되었지만, 그것은 그가 ‘글쓰기를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을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생텍쥐페리는 문학 전공자가 아니라 조종사였다. 그의 글은 이론보다 하늘을 건너며 만난 고독과 사랑의 통찰에서 나왔다.
문학은 학문 이전의 인간학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만의 언어를 가질 수 있다. 문제는 ‘문학 공부를 했는가’가 아니라, ‘삶을 진실하게 겪었는가’이다. 문학은 살아낸 자의 언어이지, 배운 자의 문장이 아니다.
물론 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이룬 성취는 크고 찬란하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 밖에서, 이름도 없이 써 내려간 한 편의 글이 무명의 기적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울리는 경우가 더 잦다. 문학은 그런 이단(異端)의 용기와 다름의 숨결로 더 풍요로워진다.
결국, 문학은 그 사람의 언어가 누구의 마음에 닿는가로 귀결된다. 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일지라도, 그 안에 사람의 온기가 있고, 시대를 관통하는 진심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이다. 문학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며, 그 자체로 인간을 위한 마지막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묻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문학을 하지 않은 사람이 쓴 글도 문학이 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문학이란 누구의 것인가?”라고. 그리고 대답해야 한다. 문학은, 누구든 진실하게 살아낸 사람의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