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비처럼 스며드는 시심(詩心), 별처럼 섬세한 응시

하봉도 시인과 김왕식 평론가



하봉도 시인의 망중한








보슬비



시인 하봉도





비가 내린다

한창 치솟던 더위가
차분히 가라앉는다

마른 잎새들
여기저기 삐져나온
풀꽃들도 젖는 비에
잠시 숨을 고른다

보슬비는
가끔은 축복처럼
마른 가슴 적시며
아련한 옛 기억들을
소환한다

발걸음 절로 옮겨지는
카페의 투명한 창가에서
행복한 추억들
담아 마시는

따뜻한 한 잔의 커피에
비 오는 날은
혼자여도 마냥 즐거웁다






보슬비처럼 스며드는 시심(詩心), 별처럼 섬세한 응시
― 하봉도 시인의 「보슬비」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하봉도 시인은 천문학을 전공한 이력답게, 대상을 향한 시선이 유난히 섬세하고 사려 깊다. 별 하나, 꽃잎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관찰자의 눈을 지녔고, 그러한 시선은 시의 언어로 전이되어 독자의 마음 깊숙한 곳을 적신다.
이번 시 「보슬비」 역시 그러하다. 소리 없이 내리는 가랑비처럼, 시인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일상의 풍경 속에 서정의 숨결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비가 내린다”는 단순한 선언에서 시작된 시는, 곧바로 ‘치솟던 더위’가 ‘차분히 가라앉는’ 변화의 리듬으로 들어선다. 이 대비는 물리적 기상현상 너머, 인간 내면의 정서적 온도 차를 함축하고 있으며, 삶의 무게와 긴장감이 보슬비처럼 가라앉는 평화의 순간을 암시한다.

특히 “마른 잎새들”, “삐져나온 풀꽃들”은 시인이 평소 얼마나 작은 생명에도 애정을 기울이는지를 드러낸다. 천문학이 우주의 광활함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하봉도 시의 세계는 그 광활함을 품은 채 현미경처럼 낮은 자리의 생명을 향해 다가간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크게 보되, 낮게 쓰다”—와 맞닿아 있다.

‘보슬비는 가끔은 축복처럼’이라는 구절은, 시적 은유를 넘어서 자연을 통한 존재의 정화를 제시한다. 이때의 보슬비는 단순한 기상이 아니라, 마른 가슴을 적시는 시간의 선물이다. 시인은 비를 통해 회한이 아닌 회복을 노래하며, 고요 속의 따뜻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후반부에서 시는 일상적 공간인 ‘카페의 투명한 창가’로 시선을 옮긴다. 과거와 현재, 자연과 인간, 외부와 내부가 교차하는 이 시공간은 시인 특유의 미의식—감성의 은둔처로서의 일상—을 드러낸다. ‘따뜻한 한 잔의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닌, 기억을 녹이는 매개이자 고독을 즐기는 성찰의 형식이다.

결국 이 시는 ‘혼자여도 마냥 즐거웁다’는 마지막 진술에 이르러, 진정한 내면의 자율성과 평온을 선언한다. 타인의 시선이나 외적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고요히 다독이는 이 성숙한 시선은 하봉도 시인의 삶의 철학—자족과 관조의 미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봉도 시인의 「보슬비」는 겉으로는 일상적 풍경을 다룬 듯하지만, 그 안에는 삶의 흐름에 순응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의 중심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마치 보슬비처럼 조용하지만, 오래도록 젖어드는 감동이다.
이 시는 결코 소란스럽지 않기에 더 깊고, 절제되어 있기에 더 단단하다. 그리고 그 단단함은 결국 독자의 마음을 위로하고 정화시키는, 진정한 시의 힘이 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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