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어리 왕자는 곧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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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존재의 본질을 묻는 가장 맑은 질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단순한 동화로 위장한 철학서이며, 동심의 언어를 빌린 삶의 성찰이다. 이 작품은 사막에서 조난당한 비행사와 작은 별에서 온 소년의 만남을 통해,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응시하도록 독자에게 촉구한다. 청람 김왕식 평론가의 문체처럼, 이 작품은 꾸밈없는 문장에 은유의 깊이를 실어 ‘존재의 겸허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어린 왕자의 시선은 맑고 간명하다. 그 눈으로 본 세상은, 어른들이 만든 복잡한 질서와는 거리가 멀다. 숫자, 권력, 효율, 소유에 집착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본질을 잃은 허상’이며, 어린 왕자는 그 허상을 차례로 순례하며 질문한다. 왕은 권위를, 허영심 많은 사람은 인정을, 술 주정뱅이는 망각을, 사업가는 소유를, 가로등 지기는 의무를, 지리학자는 사실만을 믿는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성과를 쌓고, 인정받기 위해 다투며, 의미 없는 반복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현대인. 생텍쥐페리는 이런 삶을 조용히 부정한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여우와의 만남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이 짧은 문장은 어린 왕자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다. 사랑이란 길들임이며, 길들인다는 것은 시간을 들여 서로의 존재에 책임을 지는 일이다. 여우와의 이별은 슬픔이 아니라, 관계의 본질을 깨달은 성숙의 통과의례이다. 이 장면에서 어린 왕자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고, 그것을 장미에게 되돌려준다. 여우는 그대는 그 장미에게 돌아가야 해, 그건 그 장미에게 시간을 들였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현대인은 사랑도 관계도 빠르게 소비하지만, 이 문장은 ‘시간을 들이는 사랑’이야말로 진짜임을 일깨운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어린 왕자는 뱀의 도움으로 지구를 떠난다. 외형은 죽음이지만, 본질은 귀향이다. 이 장면은 ‘떠남’을 통해 ‘남음’을 남긴다. 그가 남긴 말, “별들은 웃고 있을 거야,”는 비행사의 삶을 다시 의미로 채운다. 그 웃음은 위안이며, 기억이며, 본질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린 왕자는 말한다. 삶의 진짜 의미는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 지식이 아니라 깨달음에, 복잡한 계산이 아니라 맑은 질문에 있다는 것을. 김왕식 평론가의 문체가 그러하듯, 이 작품 또한 쉽지만 깊고, 조용하지만 강하다. 눈부신 사유 없이도, 가슴에 오래 남는 문장이 된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속에는 아직 어린 왕자가 남아 있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너는 네 장미에게 시간을 들였니?” 그 물음 앞에 진실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린 왕자는 잊지 말아야 할 단 한 권의 책이며, 삶의 본질을 되찾게 하는 가장 순수한 거울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