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남자의 우정에 부쳐ㅡ 김철삼 한범수 김왕식

김왕식

□ 서울 경복고등학교 전경 ㅡ 겸재 정선의 생가터








푸른 시절의 이름으로
—경복고등학교 세 남자의 우정에 부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누구에게나 마음 깊이 간직된 한 시절이 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 시절의 교정이 눈앞에 떠오르고, 오래된 책갈피처럼 펼치면 묵은 향기처럼 그리움이 번져오는 청춘의 계절. 나에게 그 시절은 경복고등학교라는 이름과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그 시절의 중심에는 언제나 김철삼과 한범수, 두 이름이 또렷하게 아로새겨져 있다.

김철삼 교수는 그 시절, 단연 돋보이는 별이었다. 단단한 체격에 부드러운 눈빛을 지닌 그는 상남자들의 상징인 역도부에서 중심을 잡았고, 3년 내내 학급을 이끌었던 회장으로서 친구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다. 강인함과 리더십,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겠지만, 그는 음악에도 깊은 감성을 지닌 소년이었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로고송을 부르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청춘의 깊은 곳에서 잔잔히 울리고 있다. 그 무거운 바벨을 들던 팔이 기타를 퉁기고, 지휘봉처럼 마이크를 쥐고 있었던 순간들. 그건 단지 재능을 넘어서, 균형 잡힌 인격의 반영이었다.

학업에 있어서도 그는 언제나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신촌의 언덕 위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금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모든 성취가 오만이나 자부심이 아닌, 겸손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문은 그에게 자랑이 아니라 사명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에서 그가 강단에 선 모습은, 지식보다도 인간을 품으려는 학자의 풍모를 완성한 것이다.

그와 나를 이어준, 동시에 우리 셋을 깊은 우정으로 결속시킨 또 다른 인물, 한범수 교수를 빼놓고는 이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는다. 한범수 교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존재감을 지녔다. 변론반에서 쏟아내던 유려한 언변은 그의 논리적 사고를 증명했고, 웅변대회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늘 청중을 사로잡았다. 검도장에서 뿜어내는 기백, 서예 붓을 쥔 손끝의 집중력,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며 보여주던 섬세한 감성까지—그는 예술과 무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진정한 팔방미인이었다.

그런 그가 택한 길은 관광개발학이었다. 학문적 연구와 실무를 아우르며, 오랜 세월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길렀고, 사단법인 한국관광학회를 중심에서 이끌며 학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내가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인격’이다. 상대의 장점을 아낌없이 인정하고, 늘 한 발 물러서서 사람을 세워주는 그의 태도는 진정한 스승의 품격이었다. 지금의 그가 경기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존경받는 이유는, 단지 학문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사람의 사람다움을 지켜온 사람이다.

우리 셋의 우정은 단순한 동창 이상의 깊이를 지녔다.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바래지 않고 오히려 결이 더 짙어진 한 그루의 나무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다르게 살아왔으나 마음만은 언제나 맞닿아 있었다. 삶의 언덕을 오르며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짧은 안부로, 우리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지고 살아왔다. 말보다 믿음이 앞섰고, 회상보다 현재의 응시가 더 따뜻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길은 각기 달랐다. 철삼은 세계 경제를 꿰뚫는 학자의 길을 걸었고, 범수는 교육과 학회의 중심에서 한국 관광학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나는 문학이라는 길 위에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나 그 다름이 거리가 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복고라는 청춘의 무대, 그곳에서 맺어진 마음은 어느 계절에도 시들지 않았다.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무게를 지닌 인생의 오후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마음의 창을 열어둔다.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날, 조용히 생각나는 이름들. 어떤 성취의 순간에도 함께 기뻐해줄 수 있는 벗들.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정은 그렇게 계속된다.

언젠가 셋이 다시 경복고의 낡은 운동장을 걸을 날이 오면, 아마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우정이야말로, 우리가 인생에서 쌓아온 가장 정직하고 고귀한 성채라는 것을.

그 시절, 그 사람들, 그리고 오늘의 우리.
세월은 흘러도 우정은 푸르다.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문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철삼 연세대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 한범수 경기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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