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업과 악업 ― 배움의 방향이 삶을 결정한다

김왕식





□ 지하철 벽에 게재된 글



강의 시작하며


며칠 전, 바쁜 일정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숨 가쁘게 오르내리는 사람들 사이, 문득 내 시선을 붙잡은 문구가 있었다. 지하철역 벽면에 작게 적혀 있었던 글이었다.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됩니다.”

짧고도 깊은 한 줄이었다. 누군가 지나치듯 쓴 글이었겠지만,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이 멈췄다. 똑같은 것을 마시고도 결과는 전혀 다르다는 이 비유는, 곧 인생의 모습이었다. 곧바로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두었고, 그날 이후로 계속 그 문장을 곱씹게 되었다.

그 문장에서 시작된 사유는 이렇게 이어졌다.
‘같은 배움을 받아도 누군가는 선하게, 누군가는 악하게 그것을 쓴다. 지식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배움은 젖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구나.’

지금 우리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세상의 모든 지식은 손끝 하나로 연결된다. 그런데 그 많은 배움은 과연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있는가? 어떤 이는 배운 만큼 더 교만해지고, 어떤 이는 배운 것을 이용해 남을 얕잡아보고 상처를 준다. 반대로, 어떤 이는 그 배움을 통해 누군가의 어깨를 다독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바로 그 차이를 묻고 싶었다.
‘당신의 배움은 젖인가요, 독인가요?’

이 강의는 지하철 벽에 적힌 그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무심코 쓰였을 그 글귀가 한 사람의 사유를 깨우고, 이렇게 강의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감사하다.
삶의 본질은 큰 이론보다 작고 조용한 문장에서, 아주 평범한 순간에 불쑥 다가오곤 한다.

나는 이 강의를 통해 말하고 싶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그 지식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같은 물이라도, 그것을 마시는 존재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배움도 마음의 방향에 따라 선업이 될 수도, 악업이 될 수도 있다.

그 지하철 문장은 단지 한 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시대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우리가 다시 배움의 의미를 성찰해야 할 이유였다.
그날, 내 마음에 선명히 새긴 그 한 줄을, 오늘 이 자리를 빌려 함께 나누고 싶었다.





인문학 강의
2025, 7, 7, 월, AM 11


선업과 악업
― 배움의 방향이 삶을 결정한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1. 배움은 중립적이다

―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다

‘물’은 본래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생명을 살릴 수도, 해칠 수도 있는 중립적인 존재다. 이처럼 배움도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배우는 자의 마음과 태도다.
소가 물을 마셔 젖을 만들 듯, 슬기로운 사람은 배움을 통해 공동체에 유익한 길을 선택한다. 그러나 뱀이 물을 마셔 독을 만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이는 배움을 자기 이익이나 욕망의 수단으로 삼아 결국 악업의 원인이 된다.

2. 선업은 지혜에서, 악업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다

불교에서는 업(業, karma)을 행위의 씨앗으로 본다. 모든 행위는 결과를 남기며, 그 행위의 성격에 따라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으로 나뉜다. 여기서 핵심은 지혜와 무지의 차이다.
지혜로운 자는 배움을 통해 자기를 성찰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며, 삶의 방향을 선하게 이끈다. 그는 말과 행동에 절제가 있고, 타인과 공존을 추구한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배움을 오히려 자만과 이기심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는 배움을 통해 남을 얕잡아보고, 갈등을 조장하며, 심지어 파괴를 정당화한다.

3. 왜곡된 배움은 지식의 독이 된다

현대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에 있다. 배움은 넘쳐나지만,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이고 있는지는 질문해봐야 한다. ‘머리는 똑똑한데 인격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지식은 있으나 지혜는 없는 상태, 곧 ‘배운 악업’의 결과다.
배움이 선업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명과 공동체를 향해야 한다. 자신만 잘살기 위한 지식은 경쟁을 낳지만,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한 지식은 연대를 낳는다. 후자는 생명을 살리고 전자는 때로 생명을 파괴한다.

4. 진정한 배움은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이롭게 한다

‘슬기로운 사람의 배움은 선업을 지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문장은 인문학의 본령과 닿아 있다. 공자는 말한다. “배워서 때에 맞게 행한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배움은 곧 실천이며, 그것이 선해야 삶이 밝아진다.
자신의 배움을 타인의 이익과 평화에 쓰는 것, 이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태도다. 그런 이의 배움은 누군가의 어두운 길에 등불이 되고, 고통 속의 위로가 되며,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다음 시간 예고
「그릇의 철학 ― 담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먼저다」
그릇은 무엇을 담느냐보다 어떻게 비우느냐가 중요하다. 다음 강의에서는 ‘비움’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겸손, 준비, 그리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 강의를 마치며
― 선한 배움이 당신의 삶을 밝히기를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준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된다’는 문장에서 출발한 우리의 사유가, 조금이나마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 지하철 벽에 적힌 짧은 문장 하나가 한 사람의 마음을 일으키고, 다시 이렇게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말과 글이 가진 힘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는 모두 배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한 배움은 단지 ‘아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삶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데 쓰일 때 그것은 비로소 살아 있는 배움이 된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배운 것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쓰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배움을 스스로의 무기가 되도록 만든다. 오늘 우리가 함께한 이 강의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식은 도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쥔 사람의 마음이다. 같은 가위를 들고 어떤 이는 종이를 곱게 오려 작품을 만들고, 어떤 이는 그것으로 상처를 낸다. 마음의 방향이 그 배움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선택할 차례다. 내 배움이 누구를 살릴 것인가,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를 돌아볼 시간이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정보는 넘치고, 선택은 많아졌지만, 그만큼 삶의 방향을 잃기 쉬운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배움의 본래 목적’이다. 배우는 이유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함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나만을 위한 배움은 결국 메마른 지식에 머무르고 만다. 하지만 남을 위한 배움은 따뜻한 지혜가 되어, 또 다른 생명에게 이어진다.
여러분이 오늘 이 강의를 통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으면 한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배우고 있는가?”
“내 지식은 사람을 살리고 있는가, 상처 입히고 있는가?”
이 질문이 여러분의 내일을 조금 더 선한 쪽으로 이끄는 나침반이 되기를 바란다.
배움이 젖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배움의 내용이 아니라 배움의 태도에 달려 있다.
누구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 방향을 의식하는 삶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빛이 된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오늘 이후, 젖을 품는 사람, 세상을 적시는 사람,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여러분의 삶이 선한 배움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노정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 강의를 마친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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