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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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렸으니
시인 박건옥
그토록 푸른들을
憧憬했노니
들녘을 흐르는 바람을 그리워했노니
푸른들과 바람은 나의 벗
그리움이 커지면 가슴이
미어지고 추억이 쌓여 되돌아보아도
흐른 시간은 보이지 않고
세월이 흘러 주름이 파이듯
꽃길 걷노라면 발자국 나듯
지나간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니
오늘을 오늘로 만족함은
내일은 또 다른 오늘
오! 그대가 사는 이유는
오늘과 내일을 따라 걸으며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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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린 시인의 시선
― 박건옥 시인의 삶과 시에 대하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박건옥 시인의 시 '하늘이 열렸으니'는 단정한 고요 속에서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서정적 철학시이다.
이 시는 들녘의 바람과 푸른들을 ‘벗’이라 부르며, 자연을 통해 자신을 비추고, 세월과 생을 관조하며, 오늘과 내일의 경계에 선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담담하게 응시한다.
‘그토록 푸른들을 憧憬했노니’라는 첫 행은 시인의 정서적 고향이 자연에 있음을 암시한다. ‘憧憬’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깊은 동경과 염원을 품은 정서로, 이는 단어 하나에도 생의 밀도를 실어 표현하는 박 시인의 언어관을 반영한다.
들과 바람은 그에게 단지 배경이 아닌 존재의 동반자이며, 침묵 속에서 대화하는 영혼의 친구이다.
시의 중반부로 들어가면, ‘가슴이 미어지고’ ‘추억이 쌓여’라는 표현을 통해 삶의 흔적이 과거 속에 고요히 퇴적되어 있음을 노래한다.
시인은 ‘흐른 시간은 보이지 않고’라고 하며, 시간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임을 역설한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시의 세계가 감각적 현실 너머의 깊은 내면과 접속해 있음을 보여준다.
“꽃길 걷노라면 발자국 나듯”이라는 시구는 그가 걸어온 삶의 길이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박건옥 시인은 평생을 큰소리 없이 살아온 사람이다.
그의 ‘침묵’은 말 없는 웅변이고, 그 말 없는 자리는 진실된 삶의 무게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시에는 ‘겸손’과 ‘무심’이 있고, 그 무심 속에는 존재에 대한 예리한 인식과 사색이 살아 숨 쉰다.
‘오늘을 오늘로 만족함은 / 내일은 또 다른 오늘’이라는 연은, 삶의 시간관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다.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과거에 대한 후회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박 시인의 삶의 태도이자 시의 윤리다.
이 고요한 만족은 어떤 종교적 깨달음에 버금가는 인식이며, 문득 ‘오! 그대가 사는 이유는’이라는 탄성에서, 시인은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시의 결을 매듭지으며 생과 사의 통합적 이해로 독자를 이끈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것을 말한다. 박건옥 시인의 시는 번뜩이는 기교나 언어의 격렬함 없이, 마치 오래된 우물의 물처럼 깊고 맑게 독자에게 스며든다.
삶과 죽음, 오늘과 내일, 자연과 인간이 시인의 내면에서 조용히 대화하며, 그 사유의 결은 독자로 삶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박건옥 시인의 시는 침묵의 철학이며, 그의 삶은 낮고 느리게 걷는 꽃길이다. 그 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 하나하나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품격 있는 시인의 흔적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