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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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이겨내는 마음의 서늘함
― 무더운 날을 견디는 내면의 미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덥다, 덥다 한다.
사람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이 짧은 탄식은, 단순히 온도계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여름의 체온이다.
햇빛은 바늘처럼 땅 위에 꽂히고, 콘크리트는 달궈진 프라이팬처럼 발바닥을 지핀다. 나뭇잎마저 숨을 멈추고, 바람은 미동조차 없다. 그러나, 이 혹독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은 외부에 있지 않다. 마음속에 들이는 바람, 내면의 그늘, 그것이 곧 ‘마음의 서늘함’이다.
옛사람들은 여름날 땀을 닦으며 차 한 잔을 마셨다. 무쇠 주전자에서 끓인 보리차, 그 뜨거운 물을 천천히 마시며 더위를 물리쳤다. 아이러니다. 몸은 땀을 흘리는데, 속은 오히려 식어간다. 이것이 바로 ‘뜨거움 속의 서늘함’이다. 마시는 차는 뜨겁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마음이 고요하고 맑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음을 식히는 방법은 덥다고 중얼거리지 않는 것이다.
‘덥다’는 말을 되뇌는 순간, 이미 더위는 혀끝을 타고 온몸으로 번진다. 한 번의 말이 열기를 더하고, 반복된 언어가 뇌를 지피고, 정신은 덥다는 명령에 복종한다. 이럴 때일수록 말 대신 침묵을 택하는 법. 마음이 시원해지기 위한 첫걸음은 고요함 속의 이완이다.
느리게 살아보는 것이다.
더위는 서두를수록 극대화된다. 한낮에 뛰고, 재촉하며, 들끓는 시간에 맞서면 결국 지치는 건 나 자신이다. 이럴 땐, 발걸음을 늦추고 숨을 길게 뽑아보라. 바람이 없는 날엔 내가 바람이 되는 것이다.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흡수하라. 서늘함은 그렇게 온다.
마음 안에 그늘을 들이는 법이다.
나무 그늘이 없다면, 생각의 그늘이라도 있어야 한다. 푸른 숲을 떠올리고, 조용한 계곡 물소리를 기억하고, 스쳐간 바람 한 점을 되살려보라. 내면의 풍경은 외부의 기온을 바꾼다. 실제로 차가운 것은 아니지만, 그 기억의 서늘함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준다.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땀이 흐르는 건, 몸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숨을 쉴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고, 그림자를 찾아 움직일 수 있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감사는 냉기다. 번뜩이는 에어컨 바람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온몸을 식혀준다.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자세는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더위는 여름의 본성이다. 그 본성을 거스르려 할수록 인간은 피곤해진다. 받아들이는 태도, 그 자체가 곧 극복이다. 땀을 흘릴 수 있는 계절이 있다는 것, 태양이 작열할 수 있는 하늘이 있다는 것, 그마저도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라 여길 때, 더위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계절의 숨결이 된다.
덥다, 덥다 하며 괴로워할 수도 있고,
"이 여름마저 살아 있음의 한 증표"라며
살며시 웃을 수도 있다.
서늘함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만든다.
오늘도 마음 안에 한 줄기 그늘을 들여놓자.
그 그늘이, 당신의 여름을 시원하게 해 줄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