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나무는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시인 안혜초
나무는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잎으로
꽃으로
열매로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시를 쓰지만
겨울에도 뿌리로 쉬임 없이
시를 쓴다
생명의 시
사랑의 시
소망의 시
□
안혜초 시인
이화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현대문학 3회 추천 완료.
세계 여기자 작가한국지부 부회장 역임
한국 PEN자문위원,
한국현대시협 지도위원
*시집 :
귤ㆍ레먼ㆍ탱자, 달 속의 뼈, 쓸쓸함 한 줌, 푸르름 한 줌, 살아있는 것들에는 등 8 권 한영대역시집, 중국어역시집
*수상
윤동주문학상
PEN문학상
영랑문학상 대상
기독교문학상 대상
문학 21상 대상
이화를 빛낸 상
한국문학예술상 대상 등 다수 수상.
■ 나무의 언어, 시의 뿌리
― 안혜초 시인의 '나무는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혜초 시인은 존재의 본질을 시어로 번역하는 탁월한 감식안을 지닌 시인이다. 그의 시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에 머물지 않고, 생명의 순환과 인간 내면의 성찰을 문학적 은유로 끌어올리는 힘을 지닌다. '나무는 일 년 내내 시를 쓴다'는 그러한 시인의 미의식과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시는 극도로 절제된 문장 속에 무한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해 둔다. “나무는 일 년 내내 / 시를 쓴다”는 선언은 존재의 지속성과 창조성에 대한 시인의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나무는 단지 식물이 아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상징이며, 그 뿌리부터 잎끝까지 생의 기록자이다. 그리하여 나무는 “잎으로 / 꽃으로 / 열매로” 삶의 시를 써 내려가고, 봄과 여름, 가을이라는 시간의 삼중주 안에 조용히, 그러나 찬란하게 그 서정을 담는다.
그러나 이 시의 진면목은 겨울의 구절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겨울에도 뿌리로 쉬임 없이 / 시를 쓴다”는 대목은 시인의 존재론적 시각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겉으로는 생의 흔적이 사라진 겨울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뿌리 아래에서는 여전히 창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메시지는, 침묵 속의 언어, 정지된 듯한 시간 속에서도 흐르는 생명의 진실을 일깨운다.
이는 시인의 문학 전반에 흐르는 ‘조용한 강함’, ‘보이지 않음의 아름다움’이라는 미의식과 닿아 있다. 안혜초 시인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단한 이래 여성적 섬세함과 철학적 깊이를 결합한 작품 세계로 꾸준히 주목받아왔다. ‘귤ㆍ레먼ㆍ탱자’와 같은 자연물의 이국적 감수성부터 ‘쓸쓸함 한 줌’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일상의 미세한 떨림 속에서 존재의 진실을 포착해 내는 눈을 지녀왔다.
또한 시인은 다국어로 번역된 자신의 시집을 통해 세계 문학과의 접점을 확장했으며, 윤동주문학상, 영랑문학상, PEN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들을 수상하며 문단 내외로도 그 깊이를 인정받아왔다. 그는 단순히 시를 쓰는 이를 넘어, 언어를 통해 생명을 껴안고, 시대를 보듬는 존재로 우뚝 서 있다.
결국 이 시는 말한다. 생명은 곧 시이며, 존재는 곧 기록이라는 진실을. 봄의 잎사귀는 찬란한 감탄사로, 여름의 꽃은 열정의 문장으로, 가을의 열매는 성숙의 종결어미로, 그리고 겨울의 뿌리는 침묵의 여백으로 시를 완성한다. 시인은 이러한 생명의 사계를 언어의 사계로 옮기며, 한 편의 시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속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 나무는 아마도, 사계절 내내 우리 모두의 삶을 시로 적어주는, 안혜초라는 이름의 시인일 것이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안혜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