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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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피히테
ㅡ이성에서 자아로, 세계를 건너는 두 철학자의 다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마음속 도덕법!”
칸트가 그의 철학을 요약하며 남긴 이 유명한 문장은, 철학이 단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세계, 그리고 내면의 윤리와 직결된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진심으로 듣고, 그 철학의 내장을 뜯어보며 자신의 피로 다시 엮어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요한 고트리프 피히테다.
칸트는 “나는 어떻게 아는가?”를 중심으로 철학을 개혁했다. 그의 비판철학, 특히 『순수이성비판』은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물자체(Ding an sich)’를 직접 알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오로지 인간의 인식 구조(감성, 오성, 이성) 안에서만 나타나는 ‘현상계’다. 쉽게 말해, 세상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보일 뿐, 진짜 세계는 우리의 앎 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칸트는 도덕법을 추가하여, 인간은 단순한 지식의 기계가 아니라 ‘자유롭게 도덕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존재’ 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칸트 철학을 읽고 말 그대로 ‘불이 붙은’ 청년이 있었으니, 바로 피히테다. 그는 칸트의 철학을 읽자마자 밤새 글을 쓰고, 그것을 칸트에게 보내 칭찬을 받는다. 이로써 “칸트의 진짜 후계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며, 철학계의 젊은 샛별로 떠오른다.
하지만 피히테는 단순한 칸트의 모방자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칸트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칸트는 인식의 구조를 설명했지만, 그 구조를 작동시키는 최초의 ‘시작점’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피히테의 답은 분명했다. ‘자아(Ego)’다.
피히테는 철학의 출발점을 “나는 나 자신을 단언한다”라고 선언했다. 모든 인식과 세계의 구성은 자아의 능동적인 활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 자아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설정하고, 그 너머의 ‘비자아(Non-Ego)’를 만들어내며 자기 경계를 확장한다. 요컨대,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아가 설정한 결과이며, 이 자아의 활동이 곧 세계의 발생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피히테는 칸트를 계승하면서도 넘어서게 된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 구조와 도덕 능력을 이성적 틀 속에서 조율했지만, 피히테는 그 틀을 ‘살아 있는 자아의 실천 활동’으로 보다 역동적으로 해석했다. 철학이 ‘죽은 구조’가 아니라, 자유의 창조적 실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요약하면, 칸트는 비판적 철학을 통해 인식과 도덕의 조건을 정립했고, 피히테는 초월적 관념론의 이름으로 이를 의식과 실천의 주체로 끌어올렸다. 칸트가 “앎의 조건”을 말했다면, 피히테는 “앎을 실현하는 자아의 힘”을 강조한 셈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차이는 두 철학자의 스타일이다. 칸트는 정밀하고 차가운 논리로 조심스럽게 글을 쓴 반면, 피히테는 열정적인 강연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스타일이었다. 칸트가 철학의 건축가라면, 피히테는 철학의 연설가이자, 선동가였다. 그는 철학을 단순한 사유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는 힘이라 보았고, “행동하라! 너의 자유를 증명하라!”는 식의 문장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결국 칸트와 피히테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철학적 설계자와 실행자, 사유의 규범과 실천의 열정으로 읽을 수 있다. 피히테는 칸트의 도구로 세상을 설명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 도구를 들고 “자, 이제 바꿔보자!”라고 외친 인물이었다.
두 사람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칸트는 우리가 어떻게 바르게 아는가를 물었고, 피히테는 그 앎으로 어떻게 바르게 살아갈 것인가를 물었다.
한 사람은 고요한 서재의 철학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불붙은 강단의 사상가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인간의 자유와 존엄, 이성의 힘을 믿은 사유의 거인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물음이다.
“나는 누구이며, 이 세계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 물음을 나는 내 삶으로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칸트는 길을 닦았고, 피히테는 그 길을 달렸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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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달삼이의 대화
ㅡ칸트와 피히테, 철학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청람 김왕식
저녁노을이 창가에 기울 무렵, 스승은 찻잔을 천천히 들었다. 차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달삼이는 바닥에 앉아 노트에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제목을 또박또박 적고 있었다.
“스승님, 칸트는 참 대단한 분 같아요. 그런데… 조금 어렵습니다. 머릿속이 정리되질 않아요.”
스승이 웃었다.
“칸트는 철학을 건축이라 보았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지 않으면, 전체를 볼 수 없지.”
“그런데요, 왜 그분은 ‘우리는 물자체를 알 수 없다’고 했나요? 그러면 결국 모든 게 다 허상인 건가요?”
스승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칸트는 이렇게 생각했단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 세계를 받아들이고, 그 감각을 이해하는 틀이 있다. 시간, 공간, 범주 같은 것들이지. 그 틀을 통해 우리는 ‘현상’을 볼 수 있지만, 그 틀 바깥의 ‘물자체’는 절대 알 수 없다고 말한 거야.”
“그럼 진짜 현실은… 우리 눈에 안 보인다는 말인가요?”
“정확히는, 인간이 인식하는 방식으로만 현실은 존재해. 즉,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아. 우리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만 보는 거야. 칸트는 이 점에서 기존의 철학자들과 달랐지.”
달삼이는 턱을 괴고 물었다.
“그럼… 피히테는요? 그분은 칸트의 제자였다면서요?”
스승은 창밖을 한번 바라본 뒤 말했다.
“피히테는 칸트에게 감동받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지. 그는 물었어. ‘왜 우리는 인식을 하며, 그 인식의 가장 바탕은 무엇인가?’ 그러고선 답했지. ‘자아, 즉 나 자신이 시작점이다’라고.”
“자아요?”
“그래. 피히테는 말했지. ‘나는 나를 단언한다.’ 그것이 철학의 출발이라고. 모든 세계, 대상, 타자, 심지어 시간과 공간까지도 이 자아의 능동적 활동으로 구성된다고 본 거야.”
달삼이는 펜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럼, 세계는 내가 만들어 낸 거라는 말인가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피히테에게 세계는 주어진 게 아니야. 자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설정하고, 자신의 경계를 만들어가면서 세계를 형성하지. 그 과정에서 ‘비자아’가 생겨. 나 아닌 것이 있어야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있지 않겠니?”
“그럼 칸트는 인식의 틀을 말했고, 피히테는 그 틀을 만든 주체 자체를 말한 거군요?”
“바로 그거다. 칸트는 이성이 어떻게 아는지를 정리했고, 피히테는 왜 그 아는 주체가 중요한지를 외쳤지. 그는 철학을 행동으로 바꾸었어. ‘자유를 외쳐라, 네 안에 있는 힘을 증명하라’는 식으로 말이지.”
“두 사람 다… 철학을 어렵게 쓴 것 같지만, 결국 ‘사람’이 중심이네요.”
“맞다, 달삼아. 칸트는 인간의 인식과 도덕적 책임을, 피히테는 인간의 실천적 자유를 강조했지. 칸트가 길을 닦았다면, 피히테는 그 길 위를 달린 사람이야.”
달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에 한 줄을 적었다.
“칸트는 ‘무엇을 아는가’를 물었고, 피히테는 ‘그 아는 자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스승은 다시 찻잔을 들며 미소 지었다.
“좋다. 그 문장, 오늘 철학의 핵심이다.”
달삼이는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창밖엔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별은 마치 이성을 향해 열린 창 같았고, 동시에 자기 안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스승님, 철학이란 결국… ‘나’라는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겠죠?”
스승은 찻잔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그래, 달삼아. 그 ‘나’를 묻는 순간, 우리는 이미 철학의 첫걸음을 딛고 있는 거야.”
그날 밤, 달삼이는 칸트의 책을 다시 펼쳤다. 그러나 이번엔 눈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으로 읽어내려갔다. 철학은 더 이상 먼 별이 아니었다. 그 별은, 스스로 빛나기 시작한 자아의 흔들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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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와 피히테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설명했지만, 결국 둘 다 ‘인간은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동일한 물음에 도달한다.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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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누엘 칸트(독일어: Immanuel Kant, 독일어 발음: [ɪˈmaːnu̯eːl kant], 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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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고틀리프 피히테(1762-1814)는 독일 관념론 철학자로, 칸트 철학을 계승하며 자아를 절대적 원리로 강조한 '지식학'(Wissenschaftslehre)을 창시했다. 그의 철학은 개인의 자유와 도덕적 자율성을 중심으로, 독일 민족주의와 교육 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