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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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숲이 늘어간다
청람 김왕식
숲은 언제나
소리로 가득했다.
바람이 잎사귀를 쓰다듬고,
새가 첫울음을 터뜨리며,
작은 짐승이 덤불을 헤치고 지나가던,
그 미세한 울림들로
숲은 숨을 쉬었다.
이제
숲은 점점 조용해진다.
바람은 멈춘 듯하고,
새는 날아갔으며,
풀벌레의 합창도
들리지 않는다.
침묵이 숲을 뒤덮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나무는 서 있고,
풀도 자란다.
하지만 그 속에는
소리가 없다.
소리는 관계다.
관계가 끊어질 때
소리도 멈춘다.
숲의 침묵은
종의 침묵이다.
텅 빈 둥지,
감식초처럼 사라진 벌 무리,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그림자.
어느 날,
산길을 걷다가
문득 깨닫는다.
너무 조용하다는 것을.
발소리가 울리고,
숨소리가 선명해질 만큼
숲이 말을 멈추었다는 것을.
침묵하는 숲은
죽은 숲이 아니다.
그건 기다리는 숲이다.
돌아오지 않는 생명을
기억하고,
되돌릴 수 없는 균형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시간을 품는다.
그 기다림은
영원하지 않다.
생태의 경계는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우리는
숲을 보존한다고 말한다.
산림욕장을 만들고,
등산로를 조성하고,
전망대를 세운다.
하지만 그 모든 ‘보존’은
인간의 입장에서 해석된 방식일 뿐,
숲의 언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진짜 숲은
소리로 알 수 있다.
새소리의 밀도,
곤충의 떨림,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어떻게 가로지르는가.
그 소리가 희미해질수록
숲은 약해지고 있다.
침묵하는 숲에선
생명의 재생이 더디다.
번식의 신호가 전달되지 않고,
위험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다.
결국 침묵은
고립이고,
고립은 멸종의 서곡이다.
우리는 다시
숲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건 듣는 법을
다시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고요 속에서
흐릿한 울음 하나를 붙잡고,
그 작은 떨림을
가슴에 담는 일.
숲은 말을 멈췄지만,
완전히 침묵한 건 아니다.
그 속에는 아직도
살아 있는 숨결이 있다.
다만 그것은
더 이상 귀로 들을 수 없고,
마음으로만 감지된다.
오늘,
조용히 숲에 든다.
말을 줄이고,
호흡을 낮춘다.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들린다.
한 그루 나무가
가늘게 떨리는 소리.
그건 살아 있기에 가능한
마지막 저항의 노래였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