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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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시인 최현숙 시낭송가
하루만 관심을 줄여도
뱅갈 고무나무는 위에서부터 빠르게 시들어
오늘은 분갈이를 한다
화분의 흙을 퍼내는데
예고 없이 너에게서 살만하냐는 문자가 왔다
맘을 고르고 맘을 퍼내며 사람 속에 들어 산 적 있다
꽃삽은
언제나 단도직입적이다
사람이 사람을 옮겨놓았을 때
그때의 통증을 잘 알기에
뿌리와 잔털을 털어 화분 안에 넣고 새 흙을 채우고
줄기는 다른 화분에 꽂아 흙을 덮고 물을 흠뻑 줬다
꽃삽은
모든 게 일방적이다
한쪽의 뿌리가 자리를 잡는 동안
한쪽은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하는
분갈이를 잘 끝내고
살만하다는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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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옮겨 심는 기술
― 최현숙 시인의 「분갈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최현숙 시인은 시인이자 시낭송가로서, 삶의 작은 흔들림에도 예민한 감성을 놓치지 않고 언어로 길어 올리는 이다.
그의 시 「분갈이」는 화초를 가꾸는 일상적 행위 속에 사람 사이의 이식(移植)과 적응, 그리고 내면의 성장과 치유라는 깊은 인생철학을 고요한 어조로 담아냈다. 이 시는 단순한 식물의 분갈이 과정을 넘어, 한 존재가 다른 환경과 관계 속에 자리 잡는 아픔과 희망을 비유로 풀어낸 메타포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시의 첫 행 “하루만 관심을 줄여도 / 뱅갈 고무나무는 위에서부터 빠르게 시들어”는, 생명이란 관심과 돌봄 속에서 유지된다는 진실을 상징적으로 말한다. 이는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라는 전언으로 확장된다. 식물처럼 인간도 무심에 시들며, 무관심은 관계의 균열을 불러온다. 이때 시인은 곧장 “분갈이”라는 행동에 착수한다. 이는 단순한 조치가 아닌, 생존과 회복을 위한 ‘삶의 선택’이 된다.
“예고 없이 너에게서 살만하냐는 문자가 왔다”는 구절은, 분갈이의 물리적 행위 위에 감정적, 심리적 차원의 질문을 덧입힌다. 이 문자는 마치 시든 잎 사이로 들어온 삶의 반문처럼 다가오며, 내면의 진동을 일으킨다. 시인은 “맘을 고르고 맘을 퍼내며 사람 속에 들어 산 적 있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고르고 퍼내는 마음’은 화분의 흙을 바꾸는 작업과 완벽히 겹쳐진다. 타인의 마음에 자신을 심는 일은 결국 자아를 정돈하고 비워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압권은 “꽃삽은 언제나 단도직입적이다”라는 구절에서 나타난다. 꽃삽은 식물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도구지만, 동시에 물리적 통증과 충격을 유발하는 존재이다. 이것은 곧,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삶 속으로 옮겨놓을 때 겪는 통증, 상실감, 이식의 아픔과 그대로 겹쳐진다. “사람이 사람을 옮겨놓았을 때 / 그때의 통증을 잘 알기에”라는 진술은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이의 고백이며, ‘옮긴다’는 행위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후 시인은 실제 분갈이의 과정―뿌리와 잔털을 털고 새 흙을 채우며 물을 주는 행위―를 차분히 묘사한다. 이 장면은 한 사람의 내면을 되살리기 위한 치유의례처럼 보인다. 특히 “한쪽의 뿌리가 자리를 잡는 동안 / 한쪽은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하는”이라는 표현은, 삶의 균형과 인내의 시간을 상징한다. 누군가는 이미 정착한 상태에서 누군가는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이 불균형 속에서, 시인은 ‘분갈이를 잘 끝냈다’고 담담히 말하며 이식을 통한 새로운 삶을 시사한다.
마지막 “살만하다는 답장을 보냈다”는 문장은 모든 통증의 시간을 견뎌낸 자의 작은 승리처럼 빛난다. 여기엔 ‘살만함’이라는 단어에 담긴 중의성이 인상 깊다. 그것은 단지 생존 그 이상, 어느 정도의 평안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뿌리를 뽑혀도 다시 내릴 수 있고, 삶의 화분이 바뀌어도 여전히 자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노래한 작품이다.
요컨대, 최현숙 시인의 「분갈이」는 타인의 마음과 자신의 존재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나는 작은 충돌과 크나큰 인내를 그린 시이며, 삶과 관계를 가꾸는 지혜로운 방식에 대한 메타포이다. 단도직입적인 꽃삽의 진실을 알아가는 시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단단하며, 그 끝에 이르는 평온한 “살만함”은 읽는 이에게도 위로가 된다. 삶을 옮겨 심는 기술, 그 섬세하고도 용기 있는 시적 행위에 깊은 찬사를 보낸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