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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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들야들 오이지
시인 변희자
한여름 오이
쑥쑥 자라니 백 개쯤
오지항아리에
돌을 얹어 눌러 담고
소금물에 푹 절인다
투박하지만 말쑥한
배불뚝이 없는 오지항아리
폭 좁은 속에
한여름 햇살을 절여 넣는다
주름을 입은 오이지
몇 개 꺼내어
나박나박 썰어
물기 꼭 짜고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온갖 양념에 조물조물
손맛으로 무쳐내면
오돌오돌 씹혀 더 맛나다
동글동글 얇게 저며
차가운 물에 동동 띄워
밥 한술과 함께 떠먹으면
뱃속까지 시원한 여름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려주는 데는
오이지만큼 기특한 반찬도 드물다
열 개쯤씩 덜어
이웃에 나누는 재미란
그 또한
이 여름의 소박한 별미다
■
오이지의 시학, 소박한 삶의 미학
― 변희자 시인의 「야들야들 오이지」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
변희자 시인의 시 「야들야들 오이지」는 여름 밥상 위의 한 조각 풍경을 노래하면서도, 삶의 리듬과 공동체 정신, 그리고 ‘손맛’이라는 문화적 정서를 정갈하게 담아낸 생활 서정시이다. 이 시는 단순히 한 가지 음식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빚어내는 삶의 태도와 마음의 결을 함께 절여낸 한 편의 작은 시적 일기이자, 한국적 정서의 풍경화를 문장으로 엮어낸 아름다운 소품화이다.
“한여름 오이 / 쑥쑥 자라니 백 개쯤”이라는 시작은 생명의 속도와 자연의 기운을 감각적으로 환기시킨다. 오이가 자라는 모습은 곧 여름의 시간이고, 그 백 개라는 양감은 시인의 풍요로운 삶의 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오이들은 단순히 수확의 기쁨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지항아리에 / 돌을 얹어 눌러 담고 / 소금물에 푹 절인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시간과 정성이 더해진 ‘삶의 깊이’를 목격하게 된다. 이는 곧 시인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 즉 빠르게 소비되는 삶이 아니라, 천천히 절여내는 인내와 정성의 삶을 은유한다.
이 시는 무엇보다도 ‘항아리’라는 사물을 시적 주체로 부각한다. “투박하지만 말쑥한 / 배불뚝이 없는 오지항아리”라는 표현은, 겉은 소박하나 속은 알찬 삶의 자세를 상징하며, 그것은 곧 시인의 인격과도 맞닿는다. 변희자 시인이 보여주는 삶의 가치철학은 ‘풍요보다 단정함’, ‘화려함보다 실속’이며, ‘나눔보다 드러냄 없는 따뜻함’이다. 이 항아리는 단지 저장의 도구가 아니라, 여름 햇살과 노동의 기억을 숙성시키는 ‘시간의 그릇’이며, 결국 한 가족과 이웃의 생을 부드럽게 감싸는 공동체적 상징이 된다.
중반부에 이르러 오이지는 다시 등장한다. “주름을 입은 오이지 / 몇 개 꺼내어 / 나박나박 썰어”라는 구절은 오이지라는 식재료를 ‘노년의 시간’처럼 다룬다. 주름은 노쇠함이 아니라 깊이의 흔적이며, 썰고 짜고 무쳐내는 손길은 곧 세월을 다루는 손의 기술이다.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등 우리네 부엌에서 흔한 양념들도 시인의 손을 거치며 ‘감각의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이는 음식의 조리가 곧 ‘예술의 행위’ 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며, 소박한 반찬이 어떻게 인생의 시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마지막 연은 시적 절정이자 문학적 미감의 완성이다. “동글동글 얇게 저며 / 차가운 물에 동동 띄워 / 밥 한술과 함께 떠먹으면 / 뱃속까지 시원한 여름”이라는 구절은 감각적인 묘사의 정점이다. 여기엔 단지 혀의 맛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식혀주는 ‘정서적 위안’이 담겨 있다. 변희자 시인의 시는 늘 그렇듯이, 삶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끌어안는 정서의 언어다. ‘맛’이라는 육체적 경험을 ‘감정’의 층위로 끌어올린 이 대목은, 그의 시가 생활을 미학으로 승화시킨다는 비평적 평가에 가장 부합하는 예라 할 수 있다.
마지막 행 “열 개쯤씩 덜어 / 이웃에 나누는 재미란 / 그 또한 / 이 여름의 소박한 별미다”는 이 시의 윤리적 중심이자 철학적 완결이다. 음식은 자기만족을 넘어 타인과 나눌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깊어진다. 오이지는 여기서 단순한 저장식이 아니라, 계절을 나누는 정情의 언어이며, ‘나눔’이라는 공동체적 윤리를 내포한 문학적 상징이다. 시인은 이웃에게 덜어주는 오이지 열 개를 통해 자기 세계의 일부를 베풀고, 그 속에서 삶의 미학과 인간적 따뜻함을 구현한다.
결국 이 시는 오이지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절임’이라는 행위를 ‘기억’과 ‘정서’의 보관으로 확장시키고, ‘나눔’이라는 삶의 태도를 ‘문학적 윤리’로 고양시킨다. 변희자 시인의 시는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감정은 깊고 풍요롭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음식과 문학, 계절과 인간, 노동과 정서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낸 삶’이 곧 ‘써내는 시’ 임을 증명한다.
「야들야들 오이지」는 그렇게 읽는 이의 혀 끝뿐 아니라 마음 끝까지 다다른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마루 끝에 앉아 있던 어머니의 손맛처럼, 오래도록 기억의 그늘 아래에서 시원하고도 아늑한 여운을 남긴다. 이것이 변희자 시인의 문학이고, 그의 삶이기도 하다. 소박한 삶의 결을 시로 다듬어, 그 맛과 의미를 나누는 시인의 손길에 우리는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