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풍기와 인간,생존을 위한 조용한 공생의 풍경”ㅡ변희자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소와 닭이어라



시인 변희자





너와 내가
마주 바라본다

너는 내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고

나는 너에게
몸을 허락한다

너는 심장을 돌리고
나는 숨을 돌린다

하루 종일 마주해도
우리는,
소와 닭일 뿐이어라









“선풍기와 인간, 생존을 위한 조용한 공생의 풍경”
―변희자 시인의 삶과 시적 태도를 읽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변희자 시인의 <소와 닭이어라>는 겉보기엔 조금 낯설고 추상적인 시다. 시의 배경과 상징을 알고 보면,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한 인간의 고단한 숨결이 조용히 전해진다.

시의 '너'는 선풍기, '나'는 선풍기 앞에 온몸을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시인은 둘의 관계를 단순한 기계와 사용자로 그리지 않고, 마치 살아 있는 두 생명체처럼 마주 앉아 서로의 역할을 다하는 존재로 표현한다. 선풍기는 ‘심장을 돌리고’, 사람은 ‘숨을 돌린다’. 즉, 선풍기의 회전은 곧 인간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숨결이 되는 셈이다.

시인은 이 생존의 구조를 ‘소와 닭’이라는 상징으로 마무리한다. 둘은 함께 있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거리는 무관심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을 인정한 채 공존하는 ‘침묵의 연대’다. 시인은 선풍기와 마주한 자신의 처지를 통해 인간과 도구, 인간과 자연, 인간과 타자 사이의 근본적인 거리감을 절제된 언어로 보여준다.

이 시의 핵심은 바로 ‘공생’과 ‘고독’의 이중성이다. 서로를 필요로 하지만 끝내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는 관계. 그것이 바로 소와 닭처럼, 또 인간과 선풍기처럼, 오늘의 우리 삶이기도 하다.

이처럼 변희자 시인은 짧은 문장 안에 깊은 사유를 담는다. 격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 속 작은 상황을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삶의 본질을 끌어올린다. 그의 시는 복잡한 설명 없이도, 독자에게 “나는 지금 무엇에 의지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결국 이 시는 여름날 선풍기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조용한 명상이다.
그 속엔 인간의 연약함과 타자에 대한 감사, 그리고 이해 불가능한 관계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변희자 시인의 <소와 닭이어라>는 일상의 풍경이 어떻게 철학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시다.
쉽게 읽히지만, 오래 머무는 시. 그것이 바로 변희자 시인의 작품 세계다.

ㅡ청람 김왕식


□ 변희자 시인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변희자 시인의 「야들야들 오이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