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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ㅡ제6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제6편






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제6편
피맛골 마지막 종소리



2025년 4월 13일,
일요일 오후 2시 15분.

종로 2가 피맛골 골목 깊숙한 곳에서
오래전 사라졌던 소리가 들려왔다.

종소리.
그것도 교회 종도, 학교 종도 아닌,
‘사람을 부르던 종’이었다.

“땡… 땡… 땡…”

처음엔 누가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발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봤다.

그 골목엔
사라진 줄 알았던 무언가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종소리의 주인은
윤달수(88).
피맛골의 마지막 방짜쇠장이자
골목을 지키던 ‘동네 종’ 관리인이었다.

달수는 몇 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져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마을에 누가 돌아가면
그는 여전히 집 마당에서 종을 울렸다.

종은 소리보다 의미가 먼저였고,
죽음을 알리는 방식이
고지서나 문자 대신
쇳소리였던 시절의 방식이었다.

이날,

종은 달수를 위해 울렸다.

그의 아들 윤성규(56)가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낡은 종줄을 당긴 것이다.

“내가 죽거든,
그 종으로 나를 부르거라.”

그 종소리를 듣고
삼해주방의 난복,
장수이발관의 조이발,
백운사진관의 도식,
우래옥 피맛면옥의 이만수까지
한 명씩,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골목 깊숙한 빈터에 모였다.

“그 사람… 종으로 날 깨우던 분이었지.”
“예전에, 달수 형이 종 한 번 울리면
다들 술잔 내려놓고 나왔어.”

그곳은 장례식장이 아니었다.
고상한 헌화도, 상복도 없었다.
대신 막걸리 한 잔,
국화 몇 송이,
그리고
오래된 추억이 각자 손에 들려 있었다.

성규는 작고한 아버지의 낡은 작업복을 안고
사람들 앞에 섰다.

“이 종,
사실 몇 해 전부터 금이 갔습니다.
아버진 그걸 알면서도
굳이 고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금 간 종소리가
사람 마음에 더 깊이 남는다 하셨어요.”

“완벽한 소리는
기억되지 않는다고.
세상은 삐걱대야
사람이 붙잡는다고.”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종소리를 되새겼다.
땡— 땡— 땡—
그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골목 하나의 작별 인사 같았다.

{“골목이 사라지기 전,
사람들은 종소리로 서로를 불렀다.
이제 그 종은 멈췄지만,
기억은 아직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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