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ㅡ 제7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제7편







청람의 피맛골 사람들


제7편
마포에서 온 노점상






이른 아침,
종로 2가 피맛골 입구에
새로운 손수레 하나가 들어섰다.

금속 바퀴는 오래된 아스팔트를 긁었고,
천으로 씌운 천막은 바람에 헐렁거렸다.
현수막도 간판도 없는 수레 위엔
잔치국수 몇 다발,
된장 항아리 하나,
말린 고사리 꾸러미 몇 개가
조용히 쌓여 있었다.

그 앞에 선 여자는
서복례(61).
마포시장 철거 이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피맛골로 밀려든 노점상이었다.

복례의 얼굴은
수세미처럼 닳은 손등만큼이나
햇살에 짙게 그을려 있었다.

그녀는 말이 없었고,
대신 국수 삶는 솥에
매일 시간을 삶았다.

“누구요? 저 사람.”
삼해주방 난복은 곁눈질로 물었다.

“마포에서 왔다던데요.
시장 다 부서지고, 쫓겨났대요.”
백운사진관 도식이 대답했다.

“허허… 또 골목에 쏟아지는구먼.
여기 피맛골도 지켜내기 벅찬데.”
장수이발관 조이발이 한숨을 쉬었다.

누구 하나
복례를 내쫓진 않았다.

왜냐하면,
그 골목에 사는 이들은
언젠가 한 번쯤은
‘쫓겨난
어느 날 오후,
복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국수 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그때
우래옥 피맛면옥 이만수(82)가
무심코 된장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그 속엔
된장이 아니라
편지 묶음이 들어 있었다.
한지로 묶인 손 편지 수십 통.
가운데 한 장엔
복례의 이름과 함께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서”라는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그는 조용히 뚜껑을 덮었다.


며칠 뒤,
복례는 말없이
고사리국수를 삶아
작은 종이 그릇에 담았다.

그 국수를
난복, 도식, 조이발, 이만수
각자의 문 앞에 조용히 놓았다.

국물은 짜지 않고,
고사리는 부드럽고,
면발은 울음처럼 풀렸다.

국수를 먹은 이만수는
쓸쓸히 웃으며 말했다.

“이건, 떠나겠다는 맛이야.”

다음 날 아침,
복례의 수레는 사라져 있었다.
손수레가 있던 자리에
작은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피맛골은,
마지막으로 국수가 눈물 맛이 아니었던 곳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여기선, 사람이 사람 같았어요.”

{“장터는 사라졌지만
장터의 사람은 남았다.
그리고 국수는,
떠나는 사람의 인사였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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