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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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철학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간이라는 단어에서 이제 인간다움이 지워지고 있다.
생명을 가진 자라는 생물학적 정의는 남았지만, 존재의 품격은 점점 퇴색된다.
지구는 연결되었으나, 사람은 단절되었고, 말은 넘치지만 진심은 닿지 않으며, 기술은 끝없이 진보하지만, 마음은 그에 발맞춰 자라나지 못한다.
무엇이 진보인가.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이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멈추는 존재다.
타인의 눈물을 보고 눈을 돌릴 수 없는 마음, 이기심을 꺾고 연대하는 본능,
고통의 언어를 이해하려 애쓰는 귀 — 그것이 인간의 윤리적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속도와 효율, 경쟁과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그 본능을 상실하고 있다. 더 빠른 것이 옳고, 더 많은 것이 선이며, 더 높은 것이 진리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철학은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왜 그렇게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기술이 대신하지 못한다.
AI가, 기계가, 알고리즘이 답할 수 없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다.
철학은 사건을 따르지 않고, 흐름을 거슬러 묻는다.
그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침묵 속에서 의미를 발효시킨다. 인간성이 탈색되는 오늘, 철학은 인간을 복원하는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한나 아렌트는 '악은 거창하지 않고, 생각 없는 일상에서 잉태된다'라고 절규했다. 그들은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한결같이 ‘인간’에 대해 말한다. 철학은 삶의 기술이 아니다.
삶을 납작하게 만드는 해답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질문하는 능력이다.
진정한 철학은, 고요한 방 한 칸에서 스스로에게 묻는 작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누구의 언어로 말하고 있는가. 이 분노는 누구의 분노이며, 이 욕망은 누구의 것인가.
무엇이 진짜 나인가. 이 질문에 성실할 때, 우리는 다시 인간이 된다.
우리는 지금 ‘사람의 형상’만을 지닌 이들이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다.
기계보다 차가운 논리, 화면 속 댓글보다 잔인한 말들, 누군가의 죽음조차 유희로 소비되는 미디어의 공기. 이 숨 막히는 세계에서
철학은 외친다.
“그대를,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철학은 그 누구를 위한 구원도 약속하지 않는다.
철학은 단 한 사람의 내면에
'질문의 불꽃'을 지필 수 있다.
그 불꽃이야말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세상이 자꾸만 기계 쪽으로 기울 때,
철학은 여전히 인간 쪽으로 기운다.
그것이 철학의 겸손한 위대함이며,
우리 모두가 다시 붙잡아야 할 마지막 줄기이다.
인간이 인간을 잃어버린 시대,
철학은 말한다.
“당신의 고요한 내면에서,
가장 인간다운 불안을 지켜내라.”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