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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은 고양이는 그렇게 굶었다

고양이와 어린아이들





몇몇 어린이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길 고양이를 찾아 먹이를 주고 있다.

젖은 털을 한 고양이 두세 마리가 경계를 하며 천천히 다가온다.

좀처럼 먹이에 다가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숨죽여 바라본다.


한참 후에야 다가와 천천히 먹기 시작한다.

그중 한 마리는 잔뜩 경계심을 갖고, 여전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마지막 한 마리도 합류한다.
그제야 아이들은 안도의 숨을 쉬고. 눈에는 뿌듯함이 가득 찼다.


이를 지켜본 어른들이 그런 아이들의 행동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러나
그 행복한 순간도 잠시였다.
한 중년 신사가 지나가다가 이를 목격한다.
아이들을 호통치며 꾸짖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이 바로 길고양이의 수가 늘어나는 원인'이라고 했다.
그의 호통에 아이들은 마치 죄인이 된 듯 불안에 떨며 꼼짝 않고 서 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보며 격려의 말을 건넨 어른들조차도 말이 없다.

중년 신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길고양이 문제는 단순히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아마도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일이란,
대체로 이처럼 복잡하고 어렵다.

동전의 양면처럼 한쪽에서 보면 착한 행동,

그러나 다른 쪽에서 보면 문제의 원인이 되는 행동.
아이들이 베푼 선행이 중년 신사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야기하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마도 세상의 복잡성을 깨닫는 것,

그리고 이해의 시각을 넓혀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단순히 '착하다', '나쁘다'로 나눌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년 신사의 호통과 꾸짖음은 정당한가?

신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이 길고양이는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버려졌다는 사실을!

어른은 몰랐다.

이 아이들만은 보았고, 지니고 있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우리
모두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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